2009. 6.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21)
본문 : 벧전 2:11-12
제목 :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강조해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완전하지도 못하고 영원하지도 못하고 온갖 부조리와 고통이 있는 세상이지만 이런 험한 세상 죄악 된 세상과 완전히 다른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완전한 나라 영원한 나라 참된 평화와 사랑만이 있는 곳 우리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나라가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험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나 쉽게 아주 간단하게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을 해 두시고 선택받은 우리들이 그 하나님나라를 얻을 수 있도록 이렇게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은혜와 그 사랑으로 우리가 이렇게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는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였지만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면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비록 거류민과도 같고 나그네와도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비하면 아주 순간 같은 짧은 삶이지만 그래도 기다면 긴 세월을 이 세상에서 살아야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 날의 백성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본문을 통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고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해서 법을 지키고 착한 일을 하고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의 신분에 걸맞게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악한 사람이 되어서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악한 사람들보다 더 나쁘게 산다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선한 삶을 살면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옳으심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1.나그네 인생임을 알라.
오늘 본문 11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옛날성경(개역한글)에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이라고 했고 지금 우리가 가진 성경(개역개정)에는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번역을 하든 그 뜻은 같습니다.
자기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이나 자기의 고향이 아닌 곳 자기가 정착할 것이 아닌 곳을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는 있지만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임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영원히 살 천국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을 하고 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가 영원히 살 본향처럼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삶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이 전부이고 또 이 세상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우리는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늘 이렇게만 살게 된다면 우리는 실패자요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좋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밤에 앞산 공원에 올라가보면 우뚝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보입니다. 
왜 우리 동네 아파트 꼭대기에 그렇게 화려하게 불을 켜놓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사람이 다니는 곳도 아니고 거리를 밝혀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옥상 끝에 그렇게 환하게 화려하게 불을 켜놓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같이 아파트 한 채 없이 사는 사람들 기죽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봐라 우리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산다. 너희들 부럽지.

그래요 참 부럽습니다.
우리 같은 나이가 된 사람은 저런 아파트 한 채 지니고 살지 못하면 좀 씁쓸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이 참 부러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만약에 나그네나 행인이 아니고 이 세상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사람들이 호화로운 집에서 호화로운 차를 타고 돈을 물 쓰듯이 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기가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아니라면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땅 사고 집사고 부자가 되어서 땅땅거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배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인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저 잠깐 쉬었다가는 여행지와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청년 때 다니던 교회에서 청년들을 데리고 일 년에 한 두 번씩 여행을 잘 다녔습니다.
그 때는 교회에 차도 없고 콘도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배낭들을 메고 산이나 바닷가에 가서 텐트를 치고 놀았습니다.

한번은 큰 마음먹고 신형텐트 좋은 것을 하나사서 우리 식구만 좋은 텐트에서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들이 자기만 좋은 텐트에서 잔다고 삐졌습니다.
여행 갔다가 와서까지 시험이 들어서 수습한다고 혼났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 그까짓 2-3일 사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아무텐트에서나 잘 걸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광성교회 성도님들도 저와 초창기에는 텐트가지고 많이 놀러갔습니다.
제가 새 텐트 좋은 텐트에서 자는 것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의식을 하지 못했겠지만 저는 그 때 상처 때문에 목사가 되었지만 일부러 좋지 않은 텐트에서 잤습니다.
저 인천 앞바다 어떤 섬에 갔을 때는 성도들에게 민박 방 양보하고 우리 부부는 바다가 좋다고 바다가 모래사장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물론 요즘은 형편이 좀 좋아지니까 여행도 집보다 더 좋은 콘도에서 잘 지내고 옵니다.

하루 이틀 길어야 삼사일이면 떠나 올 곳인데 아무렇게나 살면 어떻습니까? 좀 고생하면 어떻습니까?
7,80년 길어야 100여년 살다가 갈 이 세상 좀 아무렇게나 살면 어떻습니까? 
군대제대 한두 달 남겨두면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거꾸로 매달아 놔도 한두 달은 버틴다. 
아무리 고생을 시킨다고 해도 세월은 금방 간다는 것입니다. 

부자로 살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로 사시되 이 세상은 영원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지 말고 그 부를 잘 쓰시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도 부자가 되지 못했거든 세상에 부자로 사는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사십시오.
세상 사람들도 돈도 사주팔자에 있어야 버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돈 많이 벌어서 살 사람을 정해놓은 것 같습니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아 나는 돈을 많이 벌 사람이 아니구나. 라고 얼른 생각을 하고 그냥 포기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사십시오.
어차피 다 버리고 갈 걸 평생 되지도 않는 갑부 되겠다고 고생하지 말고 주시는 대로 먹고 없으면 굶고 그렇게 살려고 하면 편합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길이고 다만 나는 나그네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사십시오.
나는 내가 떠나온 나의 본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가고 있는 나그네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힘든 나그네 인생이 끝이 나면 우리 아버지 집 황금보석으로 꾸며진 너무나 좋은 집에서 슬픔이나 눈물이 없이 아픔이나 이별도 없이 늙고 병들고 죽는 일도 없이 영원한 행복한 나라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본문 11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나그네로 행인으로 사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쉬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원하는 악한 일들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은 영혼을 대적해 싸우는 것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육체가 원하는 악한 일들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육체가 원하는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영혼을 대적해서 싸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육체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의 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악한 본성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가진 악한 본성은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가진 악한 본성은 하나님나라를 싫어합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가진 악한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런 악한 본성의 주범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만 잘 되려고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무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뿐이고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욕을 하고 원수처럼 싸우려고 합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자기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을 선동해서 데모를 하고 투쟁을 하고 목숨을 걸고 덤빕니다.

이런 육신의 정욕은 지나치게 이 세상의 삶에 집착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이렇게 악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욕심을 서로 버리고 살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데 너무나 지나치게 욕심을 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 부자들은 너무나 부자들입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을 왜 그렇게 많이 차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나누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돈을 소수의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란 육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우리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선한 생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갑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영혼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음성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이 세상의 삶에 집착을 하고 따라가면 영혼의 생각과 대항하여 싸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지나칠 정도로 이 세상의 행복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축복을 교회에 다니는 최고의 목표로 삼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이 현실에 충실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좀 더 행복해져야 하고 좀 더 잘 살아야 하고 좀 더 보람 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들이 이런 육신의 축복들이 우리의 영혼의 생각을 대항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타락한 우리 육신의 악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우리 영혼의 생각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고 있는 이 길을 방해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3.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본문 12절 말씀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고 선을 행하여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아무렇게 살아도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천국 백성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은 우리를 구워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무엇을 한다고 해도 그 은혜에 보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예를 높여드리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사도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선을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잘 못살면 악하다고 비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의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고 공평하신 분이신줄 알았는데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느냐고 항의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우리를 비난합니다.
세상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악하냐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만 이웃 사랑을 외치면서 이웃 사랑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자기들만 위해서 산다고 비난을 합니다.

교회를 크게 짓고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멋있는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가 생각할 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는 시선은 곱지가 않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되는 것 같은데 나누어주는 모습은 볼 수 없고 교회에만 잔뜩 쌓아두고 자기들만 호화롭게 사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경받아야 할 목회자들은 아주 욕심이나 내고 자기 배나 채우고 세상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로 오해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 까지는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같은 목회자들은 끼니 걱정을 하고 구차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데도 능력 없다고 비웃기나 하고 자기들 욕심만 채우는 것이 대형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면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살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비웃거나 원망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선한 일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하면 우리가 선하게 살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 사람들만도 못한 짓을 하고 산다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몸을 희생시키신 예수님의 희생에 먹칠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오시는 날”은 개역한글에서는 “권고하시는 날”로 번역된 말입니다.
“오시는 날” 혹은 “다시 오시는 날” “혹은 권고하시는 날”이 어떤 날을 의미하는지 조금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즉 재림하시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라고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날이라고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지만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는 문맥으로 보아서 세 번째의 해석 즉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날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본문과 가까운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면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방법은 말로만 교회에 오라고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선한 삶을 살 때 진실 된 삶을 살 때 사랑하면서 살 때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 우리의 본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런 우리는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행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타락한 육신의 악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생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행실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요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