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36)

본문 : 마 6:13

제목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의 전반부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말에 “시험에 든다.”고 하면 “시험에 합격한다.”는 말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시험에 든다는 말은 시험에 합격한다는 말이 아니고 시험을 치루지 않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들게’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에이습헤로(είσφέρω)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끌어 들이다, 안으로 데려가다. 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부정을 뜻하는 메(μή)라는 단어가 앞에 있어서 끌어들이지 마소서 안으로 들어가게 하지 마소서 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을 좀 쉽게 설명을 하면 “우리를 시험에 끌어들이지 마시옵고”, 혹은 “우리를 시험 안으로 들어가게 하지 마시옵고” 라는 뜻이 됩니다.

마치 대학입시 시험을 보아야 하는 학생이 시험보기 싫어요, 시험 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라는 말과 같습니다.

 

 

‘시험’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헬라어에서 시험이라는 단어를 “페이라스몬”(πειρασμον)으로 썼습니다.

우리말에는 시험이라고 하면 테스트(test) 한다는 말로 생각을 합니다.

테스트란 말은 사람이나 물건을 사용하기 전에 그 가치나 능력 성능 등을 시험하여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 시험이란 단어는 좀 더 넓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테스트(test)라는 뜻도 있지만 다른 뜻도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

유혹한다는 말의 템프테이선(temptation)으로 번역이 되기도 하고, 시련이나 단련을 나타내는 트라이얼(trial)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험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문자만 보아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성경전체의 뜻을 가지고 살펴보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1.시험(test)

창세기 2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1-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시험을 영어성경에서 테스트(test)로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여러 가지로 훈련을 시키신 후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강한지를 한번 시험을 해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 시험의 내용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독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시험을 내시되 천지 창조는 며칠 동안에 하셨는가? 사람은 언제 창조하셨는가? 최초의 사람이름은 무엇인가? 혹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이론이나 상식에 관한 문제로 시험을 내신다면 그래도 그동안 배운 것으로 대답을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론이 아니고 실기로 문제를 내시는데 그것도 대강 적당한 문제가 아니고 정말로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를 내신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네 아들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 바치려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런 문제가 아니고 아들을 잡아서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하나님과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았고 또 하나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당연히 그렇게 따랐을 것입니다.

내가 겪어 보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셔 설마 내가 어떻게 하려는 지를 보시려는 것이지 꼭 죽게 하시지는 않을 거야 만약에 죽게 된다고 해도 다시 살리시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험에 무난히 합격을 했습니다. 생각할 것도 망설일 것도 없이 산으로 가서 칼을 꺼내 들 때 하나님께서 합격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시험을 우리에게도 행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요즘 다들 외아들인데 그 외아들 하나님께 잡아서 바쳐보시겠습니까?

헌금 좀 바치라고 해도 오해를 하고 삐쳐서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도 많은데 외아들을 그것도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한다면 이 시험에 합격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그런 어려운 시험은 아니겠지만 천국에 가려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기준이 있을 것이고 그 기준에 도달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기준이 성경시험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성경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마다 성경읽기 많이 합니다.

성경을 쓰기도 하고 제자훈련이니 소그룹운동이니 해서 공부들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기준이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선행이나 고행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가지고 시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도덕적인 선을 행하려고 노력들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심으로 우리를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기도 안 빠지기, 일 년에 한두 번쯤 금식기도하기, 주일 잘 지키기 교회의 직분 갖기 교회 행사 잘 참여하기, 이런 것들이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참 힘이 들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서도 늘 불안할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합격하겠나?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라는 생각에 늘 불안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이런 시험 보지 않게 해 주세요 시험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안 하시죠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비밀을 아시는 분들이니까 그렇게 어리석은 걱정은 안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내실 시험문제가 바뀌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테스트 하시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 기준에 합격한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 시험 문제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그 시험은 너무나 쉽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대학입시 과외선생님들 중에 과외비 엄청 많이 받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을 족집게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꼭 집어서 알려주니까 공부 많이 안 해도 머리가 좀 나빠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족집게 선생입니다.

제가 사례를 목적으로 목회를 한다면 사례 많이 주셔야 합니다.

대학입시도 아니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자격시험에 합격할 문제를 확실하게 가르쳐드리는데 그까짓 사례가 문제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나를 구원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대신 죽어주신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 고백하면 그것으로 합격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좀 불안하시죠?

내가 그렇게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이 고백이 진짜고백일까 이런 고백에는 삶이 따라야 한다고 하는데 고백은 하지만 삶은 좀 시원치 않아서 불안한 생각이 드십니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엄청난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이렇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에게 테스트란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험을 거쳐서 여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양씨 모여 그러면 양씨들만 모입니다.

염씨가 아니고 양씨면 다 합격입니다.

양씨가 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양씨로 태어났기에 그런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미 정해져서 그렇게 태어났기에 시험은 없습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즉 무시험으로 합격하게 해 주옵소서 그런 기도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무시험으로 합격을 했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할 일만 남아 있습니다.

 

 

2.시련(trial)

야고보서 1장에 시험에 관한 이런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2,3)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라고 했습니다.

 

 

여기 2절의 시험과 12절의 시험도 헬라어에서 페이라스몬(πειρασμον)이라고 썼지만 시련이라는 말로 번역을 해야 하는 단어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시련(trial)으로 번역을 합니다.

12절에서는 영어성경은 test로 번역을 했지만 이 역시 시련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갈 때 시험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하는 시험이지만 학교에 들어가서 치르는 시험들은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연단시키는 시험을 칩니다.

이런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기말에 시험들을 치루는 것입니다.

물론 시험을 통해서 점수도 매기고 과목을 패스하는 기준으로 삼기는 하지만 그 뜻은 그런 것을 통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라는 시험 아닌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의인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천국백성임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시험이 있는데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연단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믿음생활을 더 잘 하게 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동안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버리면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믿음만은 꼭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훈련이 없으면 이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아무런 시련도 없이 세월만 보내면 반드시 어려움이 닥치게 되고 그 어려움 때문에 신앙생활을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이 가만히 있어도 그대로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기능을 잃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도 가만히 있으면 그 능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운동을 해서 육신의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운동을 통해 활동을 통해 믿음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운동이 때로는 시련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직장을 잃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인간관계가 파괴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서 훈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이 올 때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이 닥치나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나 하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그런 시련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 인용한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이런 시련이 오면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시련들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이런 시련들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시험들 즉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이상하게 여기거나 오늘 주기도문의 말씀처럼 시험을 치루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시련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게 하고 그 인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더 잘하게 해 주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유혹(temptation)

야고보서 1:13-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신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앞에서 살펴 본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시련도 주셔서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의하면 그것이 잘못된 것처럼 생각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시험이라는 말을 잘 살펴보면 이해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헬라어에서나 우리나라 말 번역에서는 같은 시험이라는 말을 썼지만 여기 나오는 시험은 테스트나 시련이 아닌 유혹이라는 말로 번역해야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테스트(test)나 트라이얼(trial)이 아닌 유혹이라는 뜻을 가진 템프테이선(temptation)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주기도문에서의 시험도 유혹으로 번역을 해야 되는 말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유혹 즉 템프테이선(temptation)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테스트 성격의 시험은 이미 받았고 합격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무조건 합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당하는 시련들 연단들은 기쁘게 받겠습니다.

그 시련들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더 큰 상급을 받게 하는 유익한 것들이기 때문에 좀 힘들고 괴롭더라도 기쁘게 달게 받겠습니다.

우리를 단련시킨 후에 우리의 믿음이 정금 같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 유혹들은 우리 앞에서 제거시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에 죄악된 세상의 유혹에 나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욕망 때문에 생기는 유혹들을 만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런 유혹을 이길 힘이 저희에게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시지 않으십니다.

사탄이 우리의 가는 길을 방해하기 위해서 유혹을 합니다.

우리 자신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유혹에 빠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아예 유혹이 우리 앞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의 행동은 오히려 누가 유혹을 해 주지 않는가 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기도가 다 그렇듯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간절한 소망이 있는 것이고 간절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자신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것이 되기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그래도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유혹에 제일 노출되기 쉬운 사람은 마음에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지나친 욕심만 제어할 수 있다면 유혹에 빠지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 다음은 교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쉽게 사탄의 유혹에 노출이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유혹에 빠지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 다음은 게으름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할 때 일하기 싫어서 놀고 있을 때 한가할 때 목적지를 향하여 열심히 가지 않고 있을 때 서성거리며 망설이고 있을 때 반드시 사탄은 거기에 찾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 유혹에 잘 빠지는 사람은 욕심은 많고 교만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런 욕심과 교만과 게으름을 그대로 두고 이 기도를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스스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을 하면서 그래도 연약한 우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험에 합격시켜주심을 늘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믿음 때문에 시련을 당하면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유혹만큼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유혹에 연약한 부분들을 없애 주시고 유혹에 빠져서 고통당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막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