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2.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6)

본문 : 마 6:25

제목 : 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제가 살아온 세월을 잠시 생각해 보니까 참 파란만장한 세월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고향을 떠나서 50년이 넘는 세월을 타향살이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겪은 많은 일들은 다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저희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겪은 일들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호롱불이나 등잔불을 밝히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시골에도 전기가 들어와서 밤이 되어도 낮과 같이 밝은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물에 가서 물을 길러다가 먹었는데 어느 날 집집마다 싱크대까지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방송만 들었는데 텔레비전이 생기고 흑백 방송이 어느 날 칼라방송이 되었습니다.

 

전화의 변천사는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우리 어려서 시골에서는 수동으로 전화기 핸들을 돌려서 교환을 통해 전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다 자동화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집에 전화를 신청했는데 회선이 없어서 1년이나 기다려서 전화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청하기가 무섭게 바로 달아주고 그것도 유선전화는 아예 없어지고 있습니다.

돈 많은 사장님만 가질 수 있었던 휴대전화가 이제는 어린아이들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능도 전화가 아닌 휴대용컴퓨터가 되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더니 온 나라가 거미줄처럼 고속도로로 연결이 되었고 전국의 도로가 비포장도로가 없을 정도로 다 단장을 했습니다.

서울 1호선 전철이 생기더니 전 서울이 또 많은 지방도시에서 지하전철이 거미줄처럼 얽혀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살아오면서 바뀐 것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럽에서 130여년 만에 바뀐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30년 만에 바꿔치웠다고 합니다.

이런 복잡하고 자고나면 변화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좋은 일로만 발전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편리함들 때문에 걱정거리가 더 많이 생겼습니다.

이런 편리함들 때문에 이런 편리함과 같이 우리들에게 더 많은 걱정거리들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신앙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믿음과 인정이 사라지고 불신과 이기적인 마음들이 강해졌습니다.

인간성 상실, 도덕성 상실, 살인, 자살, 알코올 중독, 텔레비전 중독, 컴퓨터 게임 중독, 쇼핑 중독, 퇴폐 문화, 성적인 문란, 자기 과시, 소비 과다로 인한 부채, 그로 인한 신용불량자들의 양산, 이런 수많은 문젯거리들이 함께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을 사시는 여러분에게 이런 골치 아픈 세상에 사시는 여러분에게 오늘 설교의 주제는 참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주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오늘 설교의 주제이고 제목입니다.

이런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염려하지 말고 살라니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고 말씀들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이 “염려하지 말라”는 주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부터 34절 말씀까지 계속해서 이 주제로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고 염려라는 단어가 7번이나 사용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어떤 주제를 반복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주제라는 것입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염려를 하는 것은 아주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는 모든 것이 죄이기는 하지만 이 죄는 더 나아가서 창조주 하나님과 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믿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죄라고 했습니다.

 

실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거의 대부분의 병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스트레스는 이 염려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염려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고 그로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몹쓸 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염려라는 단어의 뜻도 “두려움이 포함된 걱정”이라고 하고 그로 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걱정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에 이 염려만 없애버린다면 정말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 시간을 통해서 염려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염려를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인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염려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1.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오늘 본문 말씀을 시작하면서 염려에 대한 교훈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염려하지 말라”라고 시작을 하셨습니다.

앞에 무슨 말씀을 하시고 나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앞의 말씀이란 19절부터 24절에 기록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주제로 말씀하신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려고 하기 때문에 염려할 일이 많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기 위해서는 돈을 모으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연구를 해야 하고 하다가보면 다른 사람의 돈을 착취해야 하고 사기를 쳐서 취해야 합니다.

또 그 모은 돈을 보관하기 위해서 염려를 많이 해야 합니다.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요즘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가 나옵니까?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마이너스 이자시대입니다.

그래서 부동산에 투자하기도 하고 주식이나 채권을 사 모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보통 골머리가 아픈 게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다 날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 연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이 세상의 삶에 올인 하여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재물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이 세상은 나그네 길임을 알고 우리가 갈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을 보물은 하늘에 쌓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알고 그 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재물에 대한 염려가 필요 없습니다.

이 길을 가는 동한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있으면 만족을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평수를 늘리려고 합니다.

20평에 사는 사람은 30평이 소원이고 30평에 사는 사람도 거기 만족하지 않고 40평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런데 나그네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쩌다가 사업이 잘못되어서 혹은 회사에서 퇴출을 당해서 집을 팔고 전세방에 산다고 해도 그렇게 크게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조금만 더 살면 영원한 나라로 이사를 가야 될 것인데 내 집이면 무슨 소용이고 셋방살이면 어떻습니까?

전세도 안 돼서 월세 방에 산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습니까?

매월 월세를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가 이 세상에 정착해서 살지 않는 나그네임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편할수록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기 때문에 그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재물과 하나님 이 두 주인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들은 참 어렵습니다.

차라리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고 사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쉽습니다.

열심히 돈만 벌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재물을 같이 섬기려고 하니까 자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세상을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돈은 모아야 되겠고 그러자니 자연히 하나님이 멀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염려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돈을 우리 종으로 만들어버리며 쉬운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기는 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있거나 말거나 전적으로 하나님만 주인으로 섬기면서 사는 사람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살려고 하면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눈치 봐 가면서 적당히 세상 사람들처럼 재물도 모으고 세상 재미도 좀 누려보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복지와 재물도 함께 섬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복지를 하는 사람들이 복지만 하려고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좀 만져보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복지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지 않습니다.

복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해서 더 내어놓고 이 사업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주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시설 직원들에게 자꾸 자꾸 강조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법대로 해라 법을 어기는 일은 원칙을 어기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내가 희생을 하고 교회가 희생을 해서 운영해야 합니다.

 

가끔은 너무나 돈이 부족하니까 편법을 좀 써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런 생각을 버리고 원칙대로 하니까 참 마음이 편합니다.

 

편법을 쓰지 않도록 교회가 많이 지원을 해야 됩니다.

바자회라도 하고 후원금이라도 내주고 해서 불법으로 운영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편법을 쓰지 않고 원리대로 하면 참 쉽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하라는 것은 하고 그러면 너무나 쉽습니다.

이리저리 눈치 보면서 하지 말라는 것 하고 하라는 것 안하려고 하니까 자꾸 문제가 생기고 근심걱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은 이렇게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땅에다가 재물을 쌓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면서 이 세상은 나그네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돈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 살면서 돈을 무시하고 돈을 벌지 않고 돈을 모으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에 재물을 쌓으려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더 염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염려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본문 말씀에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목숨’이라는 말과 ‘몸’이라는 말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프쉬케(ψυχή)라는 단어입니다.

호흡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호흡, 영, 영혼, 마음, 생명, 심령 등의 뜻으로 번역이 된 단어입니다.

 

 

‘몸’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소마(σώμα)라고 하는 단어인데 우리말처럼 몸, 신체, 육체 등으로 해석이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숨이라는 말과 몸이라는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과 이 몸속에 있는 영혼을 가리키는 말이고 생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그 속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숨과 몸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이 몸과 이 몸속에 있는 영혼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고 살 옷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꼭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은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한해 농사를 해서 일 년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해 보리농사를 거둘 때까지 힘든 시기라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소원은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선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주부들이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서 먹을까 걱정이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점심을 어떤 요리를 먹을 가 걱정을 합니다.

한식으로 할까 양식으로 할까 중국식으로 할까 중국식이면 자장면을 먹을 까 짬뽕을 먹을까 걱정을 합니다.

 

 

무엇을 입을 것인지도 옷이 없어서 걱정이 아니라 어떤 유행을 따라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멋있을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런 걱정이든 저런 걱정이든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금지하는 염려도 보통의 염려가 아닌 지나친 염려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노력들을 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과 또 우리 가족들의 생명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어려운 이웃들의 생명을 위해서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고 또 그 농산물을 사기 위해서 돈을 벌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쌓아놓기 위해서 지나친 욕심으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하는 염려들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를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한다는 그런 마음에서 오는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두셨고 지금도 공급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해 주시고 공급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염려해서 쌓아두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물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먹고 살 수 있는 양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쌓아두고 썩히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해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지나치게 쌓아두려고 애를 쓰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지나친 염려는 삼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알라

본문 말씀에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잘 모르고 삽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을 위해서 중요한 목숨을 내어버리는 것이 오늘날 인생들입니다.

 

인기 연예인들이 자살을 많이 합니다.

그들에게 소중한 것은 대중에게 받는 인기입니다.

대중들이 그를 알아주지 않고 인기가 내려가면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누가 조금만 이상한 말을 해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이런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먹고 입는 것이 중요합니까, 생명이 중요합니까?

먹고 입는 것은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이지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합니다.

목숨이 어떻게 되었던 말았던 상관이 없이 재물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심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중요한 것은 그 목숨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생명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 때문에 목숨을 경하게 여기고 그러 인해서 영원한 생명이 손상을 입는다면 정말로 불행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걱정거리가 많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염려는 지나친 재물 욕심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염려를 금하셨습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염려는 무엇이 소중한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