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3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30)

  본문 : 막 8:27-30

  제목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7.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둘이 아무것이라도 택할 수 있는 비슷한 사상이 아니라 서로 정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두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방법에 있어서도 다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무엇을 좋아하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알려주셔서 우리가 알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의 인본주의 신학은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찾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또 깊은 사색을 통해서 인간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통해서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아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남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아는 것보다 내가 느끼고 내가 경험한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느끼고 깨닫는 내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엄청난 하나님을 이해할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내가 하나님을 진실되게 느낄 만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찾을 능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타락한 욕심을 채워줄 신을 찾기 때문에 바른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찾은 대표적인 신이 바알이라는 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간섭만 하시는 분인 것 같고 바알신은 인간의 기본 욕망을 채워주는 신이었습니다. 부와 쾌락의 본능을 채워주는 신이라고 했기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 우상을 따라갔습니다.

 

  오늘날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재물 자체가 우상이 되고 더러는 인간 자신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재물이 맘몬즉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재물을 우상처럼 섬기면서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존경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좀 잘나가는 어떤 가수가 대세남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참 건방집니다. “저 건물이 내 명의야/ 그 뒤쪽 커다란 건물도 내거야/ 의심하면 시작 못 하는 거야/ 좀처럼 볼 수 없는 대세남과

 

  “아이돌이라는 말도 우상에서 온 말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젊고 얼굴 좀 잘 생기고 노래 좀 잘 부르고 춤 좀 잘 춘다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려고 할 때 인간의 욕심을 채워준다고 자처하는 거짓 신을 만나게 되고 자기 욕망이 신이 되기도 하고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타락한 죄인인지를 말씀해주셨고 그 죄에서 구원받고 다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구원자가 되심을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하여 보여주시고 또 직접 가르쳐주신 후에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물어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질문 앞에 여러분 스스로 대답해보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본문 27~28절에 “27.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게도 마가복음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마가복음의 주제이자 제목을 알고 그 주제에 맞추어서 마가복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책의 목적을 알고 그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 줄 알고 책을 보는 것과 모르고 그냥 보는 것과 차이는 엄청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를 알고 다니는 사람과 그냥 다니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우리가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목숨까지 버리고서라도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쉽게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주시는 기쁜 소식인 복음을 가지고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은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마가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가르치심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며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인지 그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귀신들린 자 불치병에 걸린 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시고 믿음의 소중함을 말씀하시면서 그 나라를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사람들이 알만도 한데 과연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하셨을 것입니다.

 

  그 물으심에 제자들이 대답을 합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그들이 아는 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라고 하여 예레미야 선지자 이름을 덧붙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론된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설명하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고 또 꼭 잘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이분들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회개를 외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오심을 예언하거나 안내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긍정적인 분으로 올바른 분으로 좋으신 분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거기까지 이르기에는 훨씬 부족한 대답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도 이 정도의 고백에서 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똑바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선지자들의 말에 동의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가 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잘 안되니까 그런 척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자만 양성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 초창기에 송명희라는 시인이 와서 간증하고 갔습니다. 온몸이 마비가 되었고 고개조차도 똑바로 세울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간증을 했는지 기억에 남진 않지만 그분이 만든 노래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습니다.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눈짓으로/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곁눈질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우리가 그 사람보다는 육신적으로 좀 멀쩡한 것 같지만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속에는 더 추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고 날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초라한 인생일 뿐입니다.

 

  회개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노력한다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본문 29절에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대답을 듣고 실망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용감한 베드로가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다가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즉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신다고 했는데 이 반석은 베드로 개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바로 앞에서 고백한 그 신앙고백을 토대로 해서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서 맨 먼저 하는 것이 이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고백했던 신앙 고백들을 잘 정리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자리에 올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도 없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 엄청난 자리 거룩한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마다 이 신앙고백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남이나 못남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재물이나 가난함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보시지 않습니다. 어차피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인간이 다 초라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고백을 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 고백을 보십니다. 그 고백이 우리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베드로 사도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신앙고백을 참 좋아합니다. 그의 신앙 고백들이 우리의 신앙 성장을 가늠해보는 좋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는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초라한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는 고백이 교회를 이루는 핵심적인 고백입니다. 죄인에게 꼭 필요한 분이 죄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이 그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자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떠났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68)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 주어질 가장 큰 복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21:17)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날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신앙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본문 30절에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이런 바른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이 일을 이 신앙고백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거나 그리스도가 되심을 나타내 보이신 후에 가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어차피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리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셨는데 막상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아직 메시야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 아직은 비밀에 부치기를 원하신 것 같습니다. 본문 바로 뒤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류하다가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메시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이 말씀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신비한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사람 즉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알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 되기 때문에 억지로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가 오히려 가짜교인이 되게 하고 예수님 팔아서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하는 사람이 있게 될까 봐 아무에게나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같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예수님께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마태복음에는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사람들이 알려주어서 그렇게 고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창세 전에 선택해주셨고 복음을 들을 귀를 주셨고 깨달아 알 수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다 베드로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귀하다는 것은 아무나 이 고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는 사람입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아무에게나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아닌 사람을 억지로 교회에 오게 해서 교회당만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 가까운 이웃 친구에게 이 복음의 비밀을 꼭 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를 물어보십니다. 이 질문 앞에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확실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를 누구라고 인정하시는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택한 백성이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룩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