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꾼

고린도전서 3장 1-15절

 

 兄弟들아 내가 神靈들을 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肉身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堪當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只今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肉身로다 너희 가운데 猜忌紛爭이 있으니 어찌 肉身하여 사람을 따라 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께서 各各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使役者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各各 自己가 일한 대로 自己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同役者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恩惠를 따라 내가 智慧로운 建築者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各各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操心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히 다른 터를 닦아 둘 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萬一 누구든지 이나 이나 寶石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사람의 功績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功績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사람의 功績이 어떠한 것을 試驗할 누구든지 그 功績이 불타면 를 받으리니 그러나 自身救援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정 때에 세운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갔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아주 귀중한 동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저들은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였습니다. 저들은 또한 사도 바울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쉽게 함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실라와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 있는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강하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의 복음 전함을 싫어하여 훼방만 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선언하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18:6). 그리하여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16개월 동안이나 유하며 저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많은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얼마 후에 사도 바울은 곧 제3차 전도 여정 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도착지가 에베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 에베소에 약 3년간 동안이나 머물면서 집중적인 복음 증거의 사역을 했습니다. 에베소의 사역에 거의 끝나 갈 즈음에 고린도 교회에서 글로에라는 사람이 사도 바울에게 왔습니다. 그는 한 장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에는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난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글로에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대하여 듣게 되었는데, 그 소식은 사도 바울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당파와 그로 인하여 분열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근친상간이 일어났지만, 교회가 이 일을 알면서도 그대로 넘어가는 도덕적인 해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서로를 세상의 불신 법정에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이 편지를 통해서 그런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피끓는 목소리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일들을 지적하고,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 일들을 잘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보내 온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입니다.

그 편지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이 가져야 하는 바른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가 마땅히 취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인지를 지적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당파 싸움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지도자들이 4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1:12). 하나는 바울파였습니다. 둘째는 아볼로파였습니다. 셋째는 게바파였습니다. 넷째는 그리스도파였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파당을 짓고 나누어졌는지 그 이유를 우리가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파당을 짓고, 나누어지고, 서로를 시기하거나 대적하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의미에서든지 파당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교회가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결코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성령은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성령의 따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파당은 그 어떤 이유를 댄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정당화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교회가 이러한 당파로 나누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나 주장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인데, 교회 안의 성도들이 이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육신적인 생각을 버리고 오직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꾼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덕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기를 원합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믿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믿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결과와 영생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사명을 위한 믿음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그 정도에 따라서 감당하는 일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믿음이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믿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믿음은 성장과 퇴보를 반복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당연히 이 두 가지의 믿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구원에 필요한 믿음은 영원한데 사명에 필요한 믿음은 변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위한 믿음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인데, 사명을 위한 믿음은 우리의 경건과 비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믿음은 사명을 위한 믿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꾼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맡은 사명을 감당함에 필요한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령한 자들믿음이 성숙한 자들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또한 어린아이는 바로 저 신령한 자들에 의해서 양육을 받는 자들입니다. 곧 영적으로 아직 미숙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인 자들입니다. 마치 한 가정에 부모와 어린아이가 함께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영적으로 성숙한 자와 미숙한 자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당파 싸움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일꾼이 가져야 하는 사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영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저들을 향하여 믿음이 성숙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꾼은 믿음이 성숙한 자여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하지 못하면 일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일을 망치고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믿음이 성숙하기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의 믿음에 걸맞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그 일을 감당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시험에 들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이 날마다 성숙되기를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성장을 꾀하고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따라갈 수 있는 자가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더 성숙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 5-7절에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맡은 일꾼들도 또한 여러 종류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꾼들 각자에게 맞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저들은 자기 당파에 얽매여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분쟁을 일삼음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분란만 일어났습니다. 그렇다 보니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일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서로의 분쟁이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쟁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볼로나 사도 바울 자신은 분쟁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세움을 받은 일꾼들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대로 열심히 씨를 심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그가 받은 사명대로 열심히 물을 주어 자라게 했습니다(6). 이것이 바로 일꾼이 받은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는 자와 물 주는 자의 순종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가 여기까지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다만 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해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진정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그 일꾼인 사도 바울이나 아볼로에게 집착하게 되는 것은 일꾼으로서 마땅한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꾼은 오직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오직 주인의 소관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사명은 나에게 주어진 것이요, 나에게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사명을 맡기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또한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까지 함께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다 보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적당한 일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과에 대하여 미리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일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마땅한 결과를 내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 앞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일을 하는데는 모두가 순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일을 시작하고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순서와 절차에 따라서 일을 진행할 때, 그 결과가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문의 지혜로운 건축자숙련된 건축자라는 뜻입니다. 즉 이 사람은 집을 건축하는 현장에서 모든 일을 총괄하면서 감독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숙련된 건축자와 같이 올바른 방법과 절차를 사용했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고린도 지역에 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시는 분명한 뜻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18:9-10).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 교회의 터를 아주 견고하게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11).

바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사역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비유했습니다. 곧 자신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 숙련된 건축자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은 하나님의 그 뜻에 따라 지혜롭게 일을 처리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에 있는 수많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지식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오히려 일을 망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일꾼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일을 하시고자 하는가? 그리고 왜 이 일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는가? 등을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일을 시작한다면 그 일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지혜는 아무렇게나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오직 성령께서 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외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에서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깊으신 뜻을 오직 성령을 통하여 그 교회와 그 일꾼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통하여 깨달은 자만이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자처한다면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그의 서신 1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넉넉하게 주실 것입니다.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풍성하게 채워 주셨던 일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왕상3:12).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하여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그 일에 대하여 평가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 15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상()은 영생이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이미 우리가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견고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과거에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상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삶에 대한 주님의 보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으로부터 반드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일꾼들은 그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반드시 남아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불로써 우리의 모든 사명을 감당한 충성에 대하여 시험하실 때에 남아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우리의 충성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대하여 열심을 다하여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건강, 지식, 재능, 부와 명예를 다하여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주심에는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라고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도록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열심에는 분명히 그 날에 남아 있는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서 우리는 올바른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도 헛된 것에 힘을 쏟는다면 그것은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불에 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아무리 열심을 내어 쌓아 보았자 그것들은 불에 의해 타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으로 열심을 낸 사람들을 수고는 했지만, 그 결과에 대하여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우리는 금이나 은과 같은 보석처럼 영원하고 그 날에 불로써 시험을 받아도 남아 있는 것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복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초등 학문이나 철학, 그리고 속임수와 같은 것을 위하여 아무리 열심을 내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고 충성하는 자에게는 금이나 은과 같은 보석처럼 그 날에도 당당하게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열심을 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하여, 세상의 없어질 것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하는 것이면서, 또한 저 자신에게 하는 설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이 광성교회에 일꾼으로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함께 일꾼이 된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 광성교회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셨습니다. 복음으로 바로 세우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교회에 세워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은 광성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격려해야 합니다. 함께 힘을 모으고, 도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 이는 세상의 일꾼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세상의 일꾼은 주인에게 고용되어 주인으로부터 맡은 일에 대하여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의중과는 상관이 없이 일만 하고 그 삯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인은 일꾼에게 일을 맡기고 그 일에 대하여 보상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꾼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단독으로 일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꾼들에게 일을 맡기고 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꾼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의 주체가 일꾼이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맡기셨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이 성숙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없는 사명 감당은 아무런 열매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은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바르게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 날에 무엇인가 남기기 위하여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 그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상급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책망과 함께 부끄러움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25:14-30).
원하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 그 날에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면류관을 받아쓰고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