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1)
본문 : 요일 5:6-8
제목 : 물과 피로 임하신 그리스도.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저희 고모님 중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말라고 주일학생들에게 가르치다가 옥고를 치르신 분이 계십니다.
유신정권이 한참 기세를 올릴 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던 시절에 국가를 상대로 국기에 대한 경례의 부당성을 외쳤던 참으로 용감하신 분입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한다는 것은 신앙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국기가 인격체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저 하나의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데 사람이 물건에다가 대고 인사를 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특별히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국기를 우상화 하고 신격화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사람이 만든 것들에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그 고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검사가 조사를 하면서 무슨 공산당이나 불순분자로 생각을 하고 조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참 착하고 여린 시골처녀여서 적당히 풀어주려고 당시의 큰 교회 목사들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성경이 정말로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잘못이라고 말하는지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단순히 신앙적인 문제라고 풀어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목사님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국기에 대한경례는 해도 되는 것인데 괜히 그러는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에게 물어봤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성경적인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이 하는 말이 사실 따지고 보면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인데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지 말고 개인 개인이 생각해서 양심적으로 판단을 해서 하든지 말든지 하게하고 공적으로는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비단 그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있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문제나 주초의 문제나 여러 가지 계명들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대강 적당히 눈감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게 짓는 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죄만 가지고 정죄를 하기에는 형편에 맞지 않고 위선자만 만드는 것이기에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까지 외면을 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욕심만 채우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선한양심마저 버리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악한 사탄의 가르침을 받고 사는 세상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을 해서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우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 할 무기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믿음이 이 세상을 싸워 이기는 힘이 된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 되심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이 믿음은 약한 것이나 강한 것이 따로 없고 다 같은 능력을 가진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싸워서 능히 이길 힘을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믿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세상과 싸워서 매사에 이길만한 능력을 발휘하는 믿음이 있고 조금만 어려운 시험을 당하면 쓰러져 버리는 연약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백전백승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전백패하는 연약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증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고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우리가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예수님은 물로 임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8절 말씀에도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라고 했습니다.

물과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한 설명이 없어서 이해를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본문이 성경말씀 가운데 가장 난해한 부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과 피를 성찬예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과 피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한 병사가 옆구리를 찔렀을 때 물과 피가 나온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생각할 때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물로 임하셨다 하면 어른 생각나는 공통적인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이 말씀을 기록하면서 어떤 설명이 없이 물로 임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다. 라고 말씀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말하는 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렇게 주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도 물이 상징하는 것은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인 그리스도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의 모습을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서례를 받으시고 곧 물 위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6-17)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좀 좋은 말씀 하신다고 좀 능력이 있고 기적을 행하신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신격화해서 섬기는 것을 보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어떤 책에 보면 동방에서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자기의 출생지가 동쪽이고 자기가 정씨이기 때문에 그 구세주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태어난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그래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따릅니다.

우리 교주님은 축구를 좋아하는데 혼자서 열 골도 넣으신다고 자랑을 합니다.
축구하는 것을 찍은 영상을 봤는데 교주님께서 공으로 몰고 가면 수비수들이 다 옆으로 비켜버리고 골키퍼도 슛하는 반대쪽으로 넘어져 버리니까 열골 아니라 백골이라도 넣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주님 축구 잘하신다고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는 것을 보니까 참 한심스럽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그런 사기꾼들과 비교하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답답하니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쓰는 언어로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로 임하신 분이시라는 말씀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특별하신 음성으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두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설명이 필요 없이 물로 임하신 것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증거라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많은 증거들 가운데 하필 이 물을 언급했느냐는 것입니다.
왜 하필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의 증거로 채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의 물세례가 상징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시작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의 모습처럼 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가 지은 죄를 자복하고 회계함으로 신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무엇인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지를 모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은 죄인이라고 하면서 의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병원에 입원한다고 병이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것을 치료 받아야 병이 낫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만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줄로 생각을 합니다.
교회에 와서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죄를 내어놓고 용서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삶이 남보다 좀 정직한 바르게 산다고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나 전통적인 신앙을 가지고 선대부터 예수님을 잘 믿은 사람은 자부심이 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그 자부심 때문에 자기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 문제입니다.
믿음은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깨닫는데서 시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별 볼일이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기 이전에는 신앙의 시작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진정한 의식이 없으면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물로 임하신 분이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임하신 사역의 처음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시작도 이 죄 문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시는 분은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여기는 죄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까마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까마귀 노는 곳에 백조가 올 필요가 없습니다.

죄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기 앉아 있기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다 형편없는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여기 모이는 것입니다.

2.예수님은 피로 임하신 분이십니다.
6절 말씀에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증거는 물로만 아니라 그 피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피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오늘날 우리들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해 주시는 것이 없으시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없을 것입니다.

너희는 죄인이다라는 사실만 알게 해 주시고 그 대책을 세워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절망 속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은 그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죽음을 당하시면서 우리가 죄 용서 받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 피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싫어하는 것은 교회에 가면 멀쩡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래도 별 부끄럼 없이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교회에만 가면 너는 흉악한 죄인이야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 된다고 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상 법에 가서 죄인이라고 자백을 했다가는 영락없이 감옥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도 죄 안 지었다고 발뺌을 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죄를 고백할 이유가 없습니다.
죄를 자백하면 지옥에 가는데 왜 죄인이라고 미리 자백을 합니까?
가만히 있으면 죄인이 되지 않는데 뭐하려고 미리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다 알고 나면, 진리를 더 깊이 알고 나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나면 그렇게 시인하고 자백하는 것이 용서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은 벌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깨끗하게 사함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이 너무나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서 보혈을 흘려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교나 천주교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스님이나 신부들이 우리 같지 않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구별해서 살고 뭔가 바르게 살려고 고행을 하고 수도를 하는 것이 좋아보여서 불교나 천주교를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목사들을 보고 당신들은 왜 고행이나 수도를 하지 않느냐 왜 너희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가지고 돈도 쓰면서 그렇게 사느냐고 비웃습니다.
우리 목사들도 죄 용서를 받는 길을 몰랐다면 그렇게 고행을 하고 수도를 하고 공적을 쌓아서라도 구원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구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쉽고 간편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바르게 살고 죄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야지 왜 그것을 나쁘다고 하느냐고 말씀들을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래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신앙의 양심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바르게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바르게 산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우리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제로입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좀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산다고 하는 그 자랑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보혈을 믿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낭패입니다.
잘난 척하고 그렇게 사는 것 보다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 바짝 엎드리는 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3.성령님께서 증거하십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임하신 분이시고 피로 임하신 분이십니다. 라고 사실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그 사실에 대해서 증인이 되어 주심으로 그 사실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만 어떤 사람은 그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아주 부정적인 것만 보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 즉 성령님의 증거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설교를 듣고서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의 차이입니다.

다 같은 말로 전도를 해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못합니다.
성령님께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가. 그렇지 않는가의 차이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 즉 성령님께서 증거해 주실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고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증거하심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 즉 거듭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싸워서 이길 무기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을 바르게 알고 가질 때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 믿음에 대한 증거들을 바르게 알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십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증거하고 계십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 승리하는 승리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