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5)
본문 : 요일 5:13
제목 :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930년대 초 미국은 심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경제공황이 온 것입니다. 
문을 닫는 공장, 문을 닫는 은행이 늘어나고 거리에는 실업자의 무리들이 할 일이 없어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런 때에 한 극장에 "입장무료"라 써 붙인 광고가 있었습니다. 
할일 없이 거리를 방황하던 실업자의 무리들이 몰려 들어갔고 심심하던 차에 재미있게 영화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윽고 영화가 끝이 나고 퇴장시간이 되어 군중들이 슬슬 퇴장을 하는데 웬걸 출입구 양쪽에 어깨가 딱 벌어진 장정 둘이 서서 돈을 내고 나가라고 합니다. 
놀란 군중들은 입장무료가 아니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예, 맞습니다. 그래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지요. 이것은 퇴장료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입장료는 없습니다.
억지로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사람으로 입장료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장료는 없지만 퇴장료는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퇴장료라는 말은 어색하지만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값을 치르고 퇴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흥가에 가서 흥청거리는 것은 자유지만 퇴장료는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마음껏 먹고 취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사람은 그만큼의 값을 지불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느 농장에 가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힘이 들지만 거기에는 지불하는 퇴장료가 아닌 보상 받는 퇴장료가 따릅니다. 
고생한 만큼 수고한 만큼 일당을 받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그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몰라보고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당장 벼락을 맞는 일도 없고 오히려 더 잘 살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업신여기고 비웃고 손가락질 하고 마음대로 욕하고 다닌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잘난 척하고 우쭐거리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퇴장료는 사망입니다.
육신이 죽는 것도 사망이지만 여기 사망은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인생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보상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영원한 생명이란 이 세상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의 연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나라에서, 행복한나라에서, 황금보석으로 집을 짓고, 슬픔이나, 눈물이나, 죽음이나, 이별이나, 배신이나, 생활고로 시달리는 일이나, 먹고 살기 위해서 중노동을 하는 일이 없는 그런 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 요한일서를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시고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는 이미 영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것이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해서 영생을 얻어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그 영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그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명이 이미 영생하는 생명으로 바뀌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으니까 이것저것 따져보고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이 다니니까 그냥 다녀야 되는구나 하고 따라 다니던 것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다니고 있습니다.

중간에 교회를 다니신 분 어른이 되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신 분은 이런 것 알고 따져보고 교회에 다니셨습니까?
그렇다면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알고 교회로 찾아오신 분들은 참으로 현명하신 분들입니다.

모르긴 해도 대부분 성도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뭐가 잘 안되니까 교회에 가면 복이나 받아서 하는 일이나 잘 되게 해 보려고 교회에 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도 몸이 잘 아프고 병치레가 심해서 몸이나 건강해볼까 싶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옛날에는 연애할 데가 없어서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 사귀어 보려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 안다니면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아내 따라 남편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연으로 교회에 오셨든지 간에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정말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있는 줄 모르고 왔는데 와서 보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투자하는 것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아주 귀한 것이 심지도 않았는데 투자하지도 않았는데 주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영생은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투자로 우리가 땀 흘려 씨를 뿌림으로 거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값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영원히 살 천국에 구경 갔다가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쉽게 믿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요한일서를 기록해서 보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미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요한일서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비단 요한일서의 기록목적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기록목적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영생을 가졌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기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이기에 그렇게 위대한 능력이 있는가 생각하실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유일한 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기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의인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정해두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의인이 영생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은혜로 이 믿음이라는 것을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시고 예정을 하신 사람들에게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예정과 선택에 의해서 우리가 믿음을 선물로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이미 받은 이 영생은 너무나 확실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별로 한 일은 없어도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만 있으면 영생을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이 믿음을 아무나 가질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영생의 확신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영생을 이미 가졌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우리가 가진 이 영생을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그 삶이 다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과 그 삶이 달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1) 무엇보다 영생을 얻게 해 준 이 믿음을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가진 이 믿음에 대해서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음을 소중한 것으로 봐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도 이 믿음이 그다지 위대한 것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대로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길이 없습니다.
돈도 권력도 선행이나 고행도 그 어떤 것도 믿음이 가지고 있는 이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살다가 보면 세상살이가 너무 힘이 들어서 왜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믿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위대한 것을 우리에게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이 이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게 하는 이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2) 이 세상보다 영원한 세상을 소망하면서 삽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사는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삽니다.
이 세상의 삶에 그렇게 집착을 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사이니까 그래도 여러분처럼 고통스럽게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을 보면 참 힘이 들게들 살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습니다.
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일하고 걱정 속에서 어렵게들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살수록 힘이 듭니다.
남들처럼 잘 살아보려고 하면 할수록 힘이 드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서 이겨 보려고 하면 너무나 힘이 드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그렇게 목을 매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형편대로 삽니다.
남들보다 좀 못한 삶을 살면서도 부끄럽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작은 집에서 산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돈이 없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실력이 없어서 좋은 대학에 못 간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 아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따로 있고 이 세상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을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진들은 모두들 더 나은 영원한 세상을 바라봄으로 이 세상에서는 어려운 삶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그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땅으로 옮겨서 장막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히11:1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11:24-25)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서 악형을 받아도 구차히 면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거기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많이 변질이 되어서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일에 목을 매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룻밤 꿈과 같은 이 세상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3) 보람된 삶을 삽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마지막 세상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고 영원한 세상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좀 양보도 하고 좀 희생도 하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보람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남을 위해서 좋은 일 하나 하지 못하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산다면 그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평생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해 보지 못하고 헌신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주시면서 이 세상에서는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고 도와주면서 사랑하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이라는 귀중한 것으로 보상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작은 양보를 명령하셨는데 그것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원한 나라에서의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상급을 바라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시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의 가족이 나의 이웃이 나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러분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시고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영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답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이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보다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더 보람된 일들을 많이 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