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55)

  본문 : 막 12:38-40

  제목 :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38.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저는 젊은 시절부터 명예욕이 강해서 남들보다 앞장서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뭘 하든지 앞장서서 리더가 되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직장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해서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임의 리더가 되는 것이나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뭐든지 남들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고 무슨 일이든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참 힘든 자리입니다.

 

  승부욕도 강해서 무엇을 하든지 이기는 것을 좋아했고 이기려고 애쓰면서 살았습니다. 남에게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기질이 아직도 남아서 야구나 축구 같은 경기를 봐도 우리 편이 지면 성질이 나서 채널을 돌려버리고 안 봅니다.

 

  재물에 관한 욕심도 강해서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하든지 돈을 좀 많이 벌어서 부자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너무 가난한 것이 한이 되어서 돈을 잔뜩 벌어서 가난하다고 무시한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아보고 싶었습니다.

 

  목회자가 된 후에는 그런 욕심은 접고 하루하루 먹고살게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드리면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문뜩문뜩 아직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돈 한번 주셔서 주님의 일 크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지나고 깨닫는 것은 이런 욕심들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나 특별히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말씀 안에서 이런 욕심들이 선하게 사용된다면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으니까 욕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정말 힘들게 살아야 하고 대부분은 편법을 사용하게 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반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예욕이나 승부욕이나 물질적인 욕심을 그대로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욕심들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다닙니다. 그것은 참된 진리를 아는 신앙이 아니라 신앙인인 체하는 위선자가 되기 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런 명예에 대한 욕심과 물질에 관한 욕심을 가진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한 위선적인 삶이며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악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위선적이고 악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대 앞에서 나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를 마음에 두고 설교 말씀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서기관을 삼가라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38.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서기관이 누구인지는 마가복음에서도 여러 번 만나봐서 잘 아실 것입니다. 보충해서 좀 더 설명해 드리면 서기라는 말은 기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각 부서에도 문서를 기록하여 보관하는 서기가 있듯이 어디에나 이런 서기가 있고 그들 중에 높은 사람을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는 인쇄기가 없었기 때문에 성경책을 만들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야 하는데 그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서기관이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온전히 보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직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이 서기관은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해서 가르치는 일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율법 학자 혹은 율법 선생이라고도 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 가운데 제사장과 장로가 있었고 서기관도 그 지도자에 속했습니다.

 

  ‘삼가라는 말은 요즘 잘 안 쓰는 말이라 어렴풋이는 알겠지만 정확하게 설명은 잘 안 될 것입니다. 우리말에서 삼가다라는 말은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말을 삼가다.” 이런 뜻으로 쓰입니다.

 

  성경에서 삼가다라는 말은 알아차리다, 인지하다심지어 통찰하다, 간파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보고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 속마음을 통찰해서 알아차리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봐서는 그들의 속내를 모르고 속기 때문에 잘 살펴보고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서기관을 삼가라고 한 말씀은 서기관들이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들을 잘 살펴서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속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서기관은 교회의 지도자급에 속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 말고 잘 살펴서 바른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이런 욕심을 따라서 살지 말고 위선자로서 살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진실한 성도가 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서기관들이 원하는 것

  본문에서 서기관들이 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명예에 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과 물질에 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명예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행동들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이고 노력해서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 될 일을 하지 않았으면서 억지로 그런 위치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과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구별해주고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해주기 위한 좋은 일입니다. 당시의 왕이나 제사장은 그들이 입는 특별한 옷이 있었습니다. 그 옷만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특별하고 화려한 옷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서기관들도 그들이 아주 특별한 신분이기 때문에 그들만 입는 옷이 있었다고 합니다. 끝이 땅에까지 닿는 긴 두루마기 옷을 입었는데 그들이 서기관으로서 성경을 필사하고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특별한 옷을 입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성경 연구는 안 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해석해서 가르치는 일은 뒷전으로 하고 사람들에게 지위만 자랑하였습니다. 만약에 당시의 서기관들이 구약성경을 연구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구약성경이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고 예수님이 그 메시야임을 알았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23:5)라고 했습니다.

  옷술을 길게 하고 경문(, 율법이 쓰인 종이)을 몸에 붙이는 띠를 아주 잘 보이도록 넓게 했습니다. 그들의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성경 연구는 안 하고 선생님이라 지위만 자랑하고 존경받으려고만 했습니다.

 

  저도 어쩌다가 역사신학을 연구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 가운은 학사나 석사보다 좀 더 무게가 있고 멋있습니다. 그래서 좀 입고 다니면서 무게를 잡고 싶은데 입을 기회가 없습니다.

 

  박사 가운을 입지 않으면 사람들이 박사인 줄 몰라보기 때문에 섭섭합니다. 그렇다고 평소에 가운을 입을 수도 없고 철학박사라고 쓴 머리띠라도 하나 만들어서 머리에 두르고 다니고 싶습니다. 무엇을 연구했는지 그 연구가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가 중요한데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고 학위만 자랑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으로 옷을 입고 이런저런 장신구들로 치장하고 다닙니다. 비싸지만 유명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반지나 목걸이나 시계나 아주 비싼 것을 좋아하고 자랑합니다. 나는 돈도 있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지나가는데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면 섭섭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선생님하고 부르면서 인사를 하면 기분이 참 좋을 것입니다.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가나 잔칫집에 가나 언제나 상석에 앉아서 대접을 받으면 참 좋습니다.

 

  마땅히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일을 한 사람이 상석에 앉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일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상석에만 앉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잔칫집에 가면 우선 제일 말석에 앉았다가 주인이 상석으로 오라고 권할 때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가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생각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좀 맞지 않거나 자기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자기주장과 자존심이나 교만함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온 세상이 평안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세상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요즘 세상이 이런 똑똑한 사람들 때문에 참 시끄럽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주장 자기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데모를 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살만한 세상인데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두가 힘든 세상을 삽니다.

 

2) 서기관들의 악행

  본문에서 서기관들의 악행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라고 했습니다. “과부의 재산을 가로채며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힘없는 과부들을 속여서 재산을 빼앗았다는 말인지 과부들이 바치는 헌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본문 바로 뒤에 나오는 과부의 헌금에 대한 기록으로 봐서 이렇게 어려운 성도들이 바친 헌금을 아무렇게나 쓰고 그것으로 호화롭게 사치하면서 사는 서기관들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도 일부 큰 교회 목사들이나 작은 교회라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목사가 된 사람들이 교인들의 헌금을 가지고 호화롭게 삽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면서 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작은 교회 목사들은 생활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 가운데도 검소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직업으로 혹은 사업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사람들은 지금은 어렵게 살지만 성공해서 그렇게 호화롭게 살려고 합니다.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란 철저하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1:17)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 사람은 처음부터 믿음이고 끝까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고 선물로 주신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이렇게 삽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선행이나 자신이 종교활동을 잘해서라고 자랑합니다. 기도를 오랫동안 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자랑할 것은 못 됩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하나님께 그렇게 오랜 시간 떼를 씁니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지혜를 달라는 기도는 많이 할수록 좋겠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것저것 요청만 하는 기도는 오랜 시간 동안 한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들은 악한 것입니다. 많은 이단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자신에게 신령한 은사가 있는 것처럼 기도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자랑합니다. 그것을 잘 살펴보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본문 40절 끝에 서기관의 악행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이런 사람들은 더욱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잘난 척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상석에서 대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랑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해서 대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고 그 노력으로 얻은 것을 자랑하면서 살면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잘난 척하면서 사는 것이 기분 나쁘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선은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는 흉악한 죄인의 습성을 가졌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일에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타락한 인생은 어느 한두 가지는 비교적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삶은 자랑할만한 삶이 못됩니다. 그래서 존경받으려고 하면 못된 것은 감추고 작은 선행을 앞세우는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위선으로 작은 일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다가 보면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자로 믿는 믿음을 소홀히 하거나 자신의 알량한 선행을 통하여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잘못된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믿음으로 판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행위대로 판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은 악행들까지 마음속에 생각만 했던 악한 것들까지 다 죄로 드러나서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그들이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이 말씀을 명심해서 그런 욕망으로 인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특별히 명심할 것은 그런 위선자들의 잘못된 행동이나 가르침 때문에 신앙이 마치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복음을 믿는 믿음을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에는 같은 말씀을 기록하면서 이런 잘못을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아주 강하게 질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3~15)

 

  여기 외식하는 자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서기관의 위선을 이야기합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것, 시장이나 회당이나 잔치 자리에서 상석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인사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거룩한 척하면서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고 믿음이 좋은 척하면서 길게 기도하는 행위들을 말합니다.

 

  이런 위선적인 행동은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천국에 가지 못하게 하는 아주 악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해서 천국 백성이 되게 하여야 하는데 어렵게 전도해서 더 지옥 백성이 되게 하는 악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 이렇게 독한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최고의 독설을 퍼부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게 하는 것은 이보다 더한 욕을 먹어도 되는 최악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위선으로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장사꾼들이 심지어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까지 이런 위선자들이 숨어들어와서 우리를 오히려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 많이 하라고 하고 선하게 살라고 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속아서 아주 작은 선한 일 조금 하면서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고 복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런 욕망 때문에 그런 위선 때문에 무서운 심판을 받는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고로 부언해서 중요한 사실 하나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살고 난 후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두 종류의 사람이 서게 됩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심판을 받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행위로 심판을 받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고 날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아주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죄를 지었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심으로 형벌이 끝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다고 말합니다.

 

  행위로 심판받는 사람은 오늘 본문의 서기관들처럼 자신이 의로운 사람인 줄 착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쳐도 모든 생각이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 행위들을 엄중하게 따져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일평생 살아오면서 지은 죄 남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죄까지 심지어 마음에 품었던 악한 생각들까지 다 심판을 받고 엄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 보면 제가 평생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외친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최고로 여긴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너무나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적인 욕심들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좀 잘 보여서 칭찬받으려는 욕심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욕심 때문에 남을 속이게 되고 위선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나는 흉악한 죄인이며 날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이 살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