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날, 존귀한 날

이사야 58장 13-14절

 

 

 

 萬一 安息日에 네 발을 하여 내 聖日娛樂하지 아니하고 安息日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聖日尊貴한 날이라 하여 이를 尊貴하게 여기고 네 길로 하지 아니하며 네 娛樂하지 아니하며 私私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祖上 야곱의 基業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019년 말부터 시작되어 약 3년 동안 전 세계를 혼란 속에 빠뜨린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현실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인간이 살아가는 전 영역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또한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쉽게 정리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이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과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이 펜데믹의 영향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 펜데믹의 문제는 단지 세상의 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임무인 예배까지도 이 코로나 펜디믹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의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사실 교회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임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보니 영상으로 예배하는 상황, 일명 비대면 예배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회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활동들이 제약을 받고,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예배와 교육, 교제와 봉사, 이웃을 향한 섬김, 전도와 선교 등이 변형되었습니다.

이러한 코로나 펜데믹 사태가 지속되고,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이행해 왔던 교회의 마땅한 모습들이 변형되면서, 교회를 출석하던 성도들 사이에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일의 개념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주일이라고 하면 마땅히 교회에 모이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도들이 교제하고, 교육을 받고, 봉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모일 수 없고, 비대면이 강요되다 보니 이러한 일들이 사라졌습니다. 주일이 되어도 교회가 가지 않으니, 일반적인 공휴일과 다를 바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가정에서 영상을 통해서 예배한다고 하지만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이 주일에 대한 성경이 가르침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자 합니다. 과연 주일은 어떤 날인지, 주일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또한 주일과 안식일은 어떤 관계이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나아가 주일은 어떻게 지켜야 하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주일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정 그리스도인들의 표징 가운데 하나인 이 주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바른 지식과 이에 근거한 바른 믿음을 갖출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주일의 문제에 있어서 아주 정확한 명령과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주일의 출발점이 되는 안식일이 어떤 날인지, 그리고 그 안식일의 유래는 언제부터인지, 나아가 구약의 안식일과 오늘날 주일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즉 안식일과 주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즐거운 날, 존귀한 날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안식일에 대한 오해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은 주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절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안식일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 오해는,

1.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고, 이 말씀 가운데서 특별한 표현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본문 13절에서 두 번이나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생각은 안식일(주일)에는 오락을 즐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주일에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면 안 되었습니다. 주일에는 운동을 해도 안 되었습니다. 심지어 야유회나 운동회 같은 것을 해도 안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도 그렇게 가르치고 지키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이 오락(חֵפֶץ)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즐기고 누리는 일들 즉,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 등 우리가 보통 말하는 레크레이션과 같은 일들을 가리키는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 단어(חֵפֶץ)가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는 ‘desire, 욕망, 욕심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과 같은 것을 나타내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결국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 즉 생업과 같은 일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분명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안식일에는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노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 대해서 본문 14절에서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라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의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굶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안식일에 대한 명령에 순종하고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먹이시고 양육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지켜야 하는 날

우리가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표현은 본문 13절에 나타나는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따라서 우리가 생각한다면 안식일을 분명 즐거운 날이요, 축제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은 나 혼자만 누리는 즐거운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축제를 벌이고, 함께 즐거워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일이라고 하면 의무적으로 교회가 가야 하는 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날, 자신이 맡은 직분 때문에 책임감으로 봉사하는 날 등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일주일 동안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제 주일 하루를 쉬는데, 그리고 해야 하고, 또는 하고 싶은 다른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교회에 가야하고, 봉사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쉴 시간조차 없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주일이 더 피곤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안식일에 대해서 즐거운 날이요, 축제를 벌이는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요, 축제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날이 기다려질 것입니다. 이 날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기쁨일 것입니다. 서로 함께하며 누리는 그 기쁨 안에서 참된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서도 안식일을 그렇게 생각하고 지키는 자들에게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 (주일), 이 날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지키고 있습니까? 이 주일은 단순히 어떤 일을 하지 않는 날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돈을 써서도 안 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만 드려야 하는 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물론 주일에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주일이 가지는 의미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날은 우리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욕망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날입니다.

또한 우리는 안식일(주일)을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주 안에서 즐거운 날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축제를 벌이는 날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안식일의 유래

우리가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생각할 때, 자꾸만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즉 구약의 안식일은 제칠일에 지키는 안식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안식일의 개념은 제칠일 안식일을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그 의미들을 생각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주신 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안식일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먼저 레위기 23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절기라고 표현된 것은 사실 지정된 날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특별하게 지정하셔서 그 날들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지키라고 명령하신 날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3절에서는 일곱째 날 안식일을 말씀하십니다. 5절에서는 유월절을 말씀하십니다. 6절에서는 무교절을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는 칠칠절(맥추절, 오순절)을 말씀하십니다. 24절에서는 71(나팔절)을 말씀하시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새해의 첫날입니다. 27절에서는 710(속죄일)을 말씀하십니다. 34절에서는 초막절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고 지켜야 할 안식일 시스템에는 이러한 날들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아주 특별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4절에 보면 일곱째 해, 곧 안식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오십 번째 해, 즉 희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안식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이 안식일 시스템 속에 등장하는 지정된 날들과 안식년, 희년, 이 모든 개념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이 주신 이 안식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답고, 복된 날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안식일은 어떻게 유래되었을까요? 우리가 안식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은 출애굽기 208절에 등장하는 십계명 가운데 제4계명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안식일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율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약의 복음 안에서는 안식일을 구약시대와 같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안식일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7”이라고 하는 숫자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일곱째 날입니다. 안식년인 일곱 번째 해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고 오십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절기들, 즉 하나님이 지키라고 지정하신 그 날들도 이 “7”이라고 하는 숫자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안식일 시스템에 등장하는 이 “7”이라고 하는 숫자에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7일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08절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11절에서 이르시기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안식일을 명령하신 근거는 창세기 11절부터 23절에 등장하는 천지 창조의 사역에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절에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쉬신 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서 2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기록을 보면 모든 과정이 안식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 근거는 바로 창세기 2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근거가 등장하는데, 이는 천지 창조의 과정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순서대로 보면 첫째 날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셋째 날은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시고 육지에 식물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넷째 날부터의 창조는 처음 3일간의 창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넷째 날은 광명을 만드심으로 첫째 날에 창조된 빛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새들과 물고기를 만드심으로 둘째 날에 창조된 궁창과 물 가운데서 살게 하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땅에 기는 동물들과 사람을 만드심으로 셋째 날에 창조된 육지의 모든 것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일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평가가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좋았더라(טוֹב, good)”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곱째 날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거룩하게 하셨다(קָדַשׁ, holy)”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안식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날을 거룩(holy)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과정이 마지막 날인 안식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 넷째 날의 사역과 관련되어 의미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창세기 114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하늘에 광명체, 곧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낮과 밤을 나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바로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이를 원문의 의미를 따라 번역하면 그것들로 지정하신 날들과 날과 해를 이루는 표징(sign)이 되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성경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와 이 시대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일차적으로 그 때, 그 곳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구약시대, 특히 모세가 이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달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땅에는 우리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1, 2월과 같은 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2023년과 같은 년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7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낮과 밤이 반복되면 1일이고 그것이 7번 반복되면 일곱째 날, 곧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그 안식일이 4번 지나면 한 달이 되고, 그 달이 12번 지나면 1년이 되고, 1년이 7번 지나면 안식년이 되고, 안식년이 7번 지나면 그 다음 해가 희년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러한 말씀을 주신 것은 분명 아닙니다. 다만 훗날 모세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이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저 광명체들을 만드실 때 그 광명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그 안식일 시스템들을 계산할 수 있도록 sign으로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의 외경 중에 Jubilees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태양이라고 하는 큰 Sign을 땅 위에 만드셔서 날들과 안식일, 달과 절기들, 해와 안식년, 희년 등 하나님이 지정하신 날들과 시간들을 계산할 수 있게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저 유대인들은 하늘의 광명체가 이 안식일 시스템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십계명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미 안식일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출애굽 전의 시대까지의 사람들은 안식일 시스템 속에서 살지 못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지정한 그 절기들도 출애굽 이후에 주어졌습니다. 안식년이나 희년도 출애굽 이후에 규정으로 주어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이 안식일 시스템들을 구별하게 하시고,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그 구원을 기념하는 날로 기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은 그리스도인들과 관계되는 날입니다. 저 세상 사람들에게는 단지 하루를 쉬는 날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날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억하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날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

그렇다면 이 안식일과 오늘의 주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당연히 안식일과 주일은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안식일과 주일이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주일이 거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어느 신학자는 안식일과 주일은 약 95%의 동일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기독교의 오랜 전통 속에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 43장을 보면 이는 주일에 관한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찬송의 작자는 안식일과 주일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1절에서는 이 날을 즐겁게 안식할 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사야 58장에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으로는 이렇게 찬송하고 있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이 찬송의 고백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또한 3절에서는 이 주일 지킴으로라고 고백함으로 안식일과 주일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또한 안식일과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은 성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 날들과 절기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안식일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 앞에 모여서 예배하는 날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 이 땅에 남겨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했습니다(13:14). 그리고 어떤 때는 안식일 다음 날에 예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20:7, 고전16:2).

그러다가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서 파괴됩니다. 이 때부터 유대인들과 기독교인 사이에 심각한 갈등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회당에서 예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안식일에 예배하는 일보다 매주의 첫날 곧 안식일 다음 날에 예배하는 일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면 마침내 오늘 우리가 말하는 주일에 예배하는 것으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유명한 순교자로 남은 Justine이 남긴 글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일요일(Sunday)이라고 불리는 날에 도시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말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고, 지도자(president)가 가르치고 권면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즉 그 날(Sunday)에 모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이 첫째 날에 어두움 가운데서 빛과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저 신앙의 선배들이 안식일이 아닌 다음 날, 곧 주일에 모여 예배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구약은 신약을 향하여 진행된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구약을 완전히 성취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안식일 시스템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이 사건은 그분의 대속 사역의 완성과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이 아닌 안식일 다음 날, 즉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모여서 예배한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로 세상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안식일에 매여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일이라고 불리는 이 날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된 날이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역에 완성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날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이 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과 주일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일을 지킴에 있어서 안식일의 의미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 날은 즐거운 날이요, 여호와 앞에서 존귀한 날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즐기는 축제의 날입니다. 또한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영원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예배해야 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이 주일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알고, 바로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을 누리고,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일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