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17)
본문 : 벧후 2:15-16
제목 :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베드로전후서는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실제적이고 중요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방해공작과 핍박이 올지라도 우리가 가진 이 산 소망 때문에 끝까지 참고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에는 교회 내부에 침투하는 이단이나 거짓선생의 가르침에 속아서 진리의 길을 버리고 엉뚱한 길로 갈까봐 사탄의 사주를 받는 거짓선생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거기 속아 넘어가지 말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교회에까지 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참 어려운 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걸려서 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권함을 받아도 못 오고 맙니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통과하고 겨우 교회에까지 왔는데 교회에 와서 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고 거짓선생에게 속아서 엉뚱한 길로 가고 만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성경을 바르게 알고 진리의 길에 바로 서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바른길을 떠나가는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을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을 받은 브올의 아들 발람이라는 선지자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 오늘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우리는 그들에게 속지 않고 바른길로 가기를 다짐하게 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발람의 이야기는 민수기 22장에서 24장에 걸쳐서 기록이 되어 있는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에서 인용을 한 내용입니다.

발람과 이름이 비슷한 발락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발락은 모압의 왕이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이 모압이라는 나라는 원래 이스라엘과 친척지간입니다. 

발락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여년을 지나는 동안 기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제 모압 땅을 통과하여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해서 자기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발람을 선지자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메소포타미아지방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점쟁이 박수무당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이방신도 알고 아무신이나 섬기는 다른 종교의 선지자였습니다.

발락은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의 손에 복채를 들려 강변에 있는 발람이라는 사람을 불러오라고 명합니다. 
발람이 무당이면서 또 하나님께 기도도 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스라엘백성에게 저주하지도 말고 그들을 따라 가지도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못 간다고 하자 이번에는 더 높은 고관들을 보내서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만 해 주면 높은 지위도 주고 달라고 하는 것 다 줄 테니 꼭 와달라고 당부를 합니다.
다시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러면 꼭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은 말하지 않겠는데 가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발람이 이제 됐다 싶어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하도 가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니까 허락은 하셨지만 사자를 보내셔서 길을 막고 발람이 지나가면 죽여 버리려고 하셨습니다.
발람은 그 사자를 보지 못했지만 발람이 타고 가던 그 나귀가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채찍질을 합니다.
가다가 뒷걸음질 하고 그러면 또 때리고 세 번이나 그렇게 하자 갑자기 나귀가 사람의 말을 합니다.
나는 당신이 일생동안 타고 다닌 나귀인데 내가 언제 한번이나 이런 짓을 한 일이 있느냐 (내가 이럴 때는 무슨 사정이 있나 알아보아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할 때 그제야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갈 길을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발람은 발락에게로 갔고 그런 행동을 발람의 어그러진 길이라고 말하고 거짓선생들이 그 길을 따르고 있다고 지적을 합니다.

오늘 이 발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거짓선생들의 특징을 살펴보고 우리는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바른 길을 가야된다는 다짐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1.진리의 길에 서지 못함
본문 15절 말씀에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바른 길”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유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리의 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발람을 이야기 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은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할 줄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대로 순종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도 알았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축복을 하면 복을 받고 저주를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뭔가 비슷한 점이 많이 있고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 선지자와 같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편이 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바른 뜻을 따라야 하고 진리의 길에 바로 서 있어야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발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선지자 흉내를 조금 내었을 뿐이지 하나님의 선지자는 아니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를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런 발람과 같은 선지자를 목사로 모시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서 교회란 기독교, 예수교, 그리스도교입니다.
기독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한자어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가끔 하나님의 교회, 혹은 하나님의 성회, 또는 성령님의 교회 이런 간판을 단 교회들이 있는데 교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성부하나님이고 또 성령 하나님의 역할도 우리에게 매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하거나 통과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거나 십자가의 복음이 신앙의 핵심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말하고 기도도 하고 이적도 일으키고 해서 교회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진리에 바로 서 있는 참된 교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진리가 뭐 그리 중요한가, 교리가 왜 필요한가, 그냥 착한마음 가지고 살면 되고 교회에 다니면 되고 기도해서 이복 저 복 받으면 되고 마음 편하게 잘 살면 되지 라고들 말합니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교회에 안다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술 담배만 안 해도 그게 어딥니까?
착한 마음 가지고 아내 사랑하고 자녀들 사랑하고 부모님 잘 섬기는 것만 해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것들 때문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흉악한 죄인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얻기 위해서 다니는 곳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으면, 천국을 소망하고 살지 않으면, 그 진리를 알지 못하면 교회에 다니는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이신 저신 따르다가 세상 복이나 받으려고 하는 발람과 다를 게 없습니다.
무늬만 성도이고 교회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2.불의의 삯을 위해서 일함
본문 15절 하반 절에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라고 했습니다.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불의의 행동에 대한 삯을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원래 당시의 전술가들 박수무당들은 점을 쳐주거나 굿을 해 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은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돈 때문에 쓸데없이 굿을 하라고 하고 염불보다는 잿밥에 마음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발람에게 처음 발락이 보낸 사람들이 왔을 때 기도해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사람 보내버리면 될 것인데 미련이 남아서 못 보내고 또 기도해 보고 또 기도해 보고 자꾸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을 봅니다.

나중에 오기만 하면 출세도 시켜주고 달라는 것 다 주어서 팔자를 고쳐준다고 하니까 마음이 더 흔들리는 것입니다.

억지로 기도해서 가는 것을 허락을 받았지만 말 못하는 나귀에게 사람의 말까지 하게 해서 책망을 받았으면 그냥 보내면 될 것인데 그놈의 욕심 때문에 끝까지 따라갑니다.

그곳에 가서 하는 행동도 보면 재물에 대해서 참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뭐라고 합니까?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 마리하고 숫양 일곱 마리를 제물로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 제물은 누구의 것이 됩니까? 발람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세 번까지 이 산 저산 다니면서 제사를 드리게 하고 재물을 챙겼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들어 와 있는 이단들이나 거짓 선생들의 목적은 재물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돈 생기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돈 많이 내면 무엇이든지 합니다.

박수무당 같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복채를 챙겨서 자기들의 이익을 삼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돈을 좋아하면 돈을 많이 모으려고 하면 그 시간부로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는 박수무당처럼 점 봐주고 예배드려주고 돈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에 우리 주변에 좀 큰 교회 목사님이 정말 기도도 많이 하고 훌륭한 목사라고 소문난 목사님이신데 재정 장부를 보니까 5년 동안 개인이 생활비로 자녀교육비로 30억이 넘는 돈을 가져갔습니다.

물론 연간 수십억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는 연간 100억씩 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 비교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목사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천국에 소망을 두라고 하면서 성도들에게는 희생하고 헌신하고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면서 자기는 이 땅의 재물을 탐하고 모은다면 그 사람은 진짜 목사가 아니라 삯군목사에 불과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고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돈이 많이 들어왔으면 이런 설교 못합니다.
없으니까 이렇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삯군목사는 따르는 사람들도 결국은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재물의 복을 받게 해 준다고 하니까 거기 마음이 끌려서 거짓선생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 재물 위해서 기도하는 것 그만 할 때도 됐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가 받은 은혜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으면 부스러기 축복 같은 것 욕심 안낼 때도 됐지 않습니까?
세상의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에 다닌다면 발람을 따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3.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킴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요한계시록 2장에는 발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척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개입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를 놓게 해서 타락하게 하고 벌을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5장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해서 자기들이 제사를 드릴 때 오게 해서 음식도 먹게 하기 자기들 섬기는 신에게 절을 하게하고 또 함께 행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 누가 있었습니까? 
발람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발락에게 수법을 가르쳐주고 유혹을 하게 해서 죄를 짓게 만들고 엄청난 형벌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염병이 돌게 하셔서 그 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생각으로 하면 이만 사천 명이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인구로 보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입니다.

중국에 가보니까 땅도 넓고 사람도 많아서 수십 명 수백 명 죽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십여 명이 죽어도 대형 사고라고 할 텐데 중국에 가면 십여 명은 사람도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만 사천 명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제 광야의 훈련도 다 마치고 하나님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 땅에 곧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동안 고생고생해서 살아남았고 불신의 죄를 범한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곧 가나안 복지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알곡 같은 사람들인데 그만 순간의 실수로 유혹에 넘어가서 비참하게 죽고 만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요? 거짓선지자 발람 때문에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교회까지 오기가 얼마나 어렵다고 했습니까?
진짜 어렵습니다.
훈련도 받고 실패도 경험하고 이제 정말로 인간답게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고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 와서 거짓선생들에게 속아서 우리 속에 있는 쾌락의 욕심이 살아나서 타락하게 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옛날에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란 책이 나왔는데 어떤 사람이 망신창이가 되어서 교회를 찾아 왔는데 이상한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와서 더 상처만 받고 또 다른 교회를 찾아 갔는데 그 교회는 이단 교회였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교회까지 와서 여기서 거짓선생에게 속아서 진리에서 떠나거나 물질적으로 타락을 하거나 세상 쾌락 때문에 다시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성도님들도 그런 거짓선생에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쾌락을 향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지나친 오락도 삼가고 너무 재미재미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취미생활도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적당히 하셔야 됩니다.

재미있게 사는 것 제가 배가 아파서 그러는 것 아니고 사탄이 거기 개입을 해서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짜 선지자 발람을 통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확실하게 진리를 알고 그 진리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비슷하다고 거기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의 삯을 위해서 사는 자들을 조심하고 우리도 나무 세상 재물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쾌락에 빠져서 이 좋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놓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