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
히브리서 7장 26~28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영웅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영웅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인 영웅, 또는 사상적인 영웅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영웅으로 인해 환호성을 지릅니다. 위대한 사람으로 추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영웅들이 어떤 존재입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도 한낱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도 완전한 존재는 아닙니다. 나름대로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약점이나 부족한 면을 반드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쉽게 드러나고 맙니다.
특히 우리의 영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과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위대한 선진이라 할지라도 그 자신이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세우심을 입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한낱 죄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지 못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요14:6).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엡2:8). 아무리 우리가 몸부림쳐도, 우리가 아무리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요, 부족함과 연약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인간의 이러한 불완전함과 비교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에 등장하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 많은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의 생명이 유한합니다. 저들의 사역이 유한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직은 후손에게 계속해서 위임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저들이 드리는 제사의 효력이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제사는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속죄 사역은 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그 누구에게 이양될 수 없고, 그 누가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그분의 속죄 사역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감당했던 속죄 사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반복될 수 없는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분 자신이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삼으시고,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드린 그 속죄의 제사(십자가)는 가고 오는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든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우리에게 합당하신 대제사장
본문 26절에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합당하다(πρέπω)”라는 것은 ‘적당하다, 어울리다, 알맞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요, 가장 적당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를 통해서 우리의 시선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거룩하십니다. 여기에서 “거룩하다(ὅσιος)”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를 정확하고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거룩(ἅγιος, 구별된, 하나님께 바쳐진)”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이 표현이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께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우리와 같은 완전한 사람이 되셨지만, 그분은 그 어떤 사람도 가지지 못한 거룩함을 가지신 분입니다. 천사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아론도 가질 수 없는 거룩을 가지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악이 없으십니다. 여기에서 “악이 없다(ἄκακος)”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입니다. 하나는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예수 그리스도를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악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어떤 악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악으로부터 자유하신 분이십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에게도 악을 행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악에게 영향을 받고, 그 악을 행사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더러움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더러움이 없다(ἀμίαντος)”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순결함(pure)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더러움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 더러움으로 인해 자신들을 위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러움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제사가 필요 없으신 완전무결한 제사장이십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 여기에서 “떠나계신다(χωρίζω)”라고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과 같이 완전하게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죄인들의 죄와는 무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은 무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섯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보다 높이 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셨습니다(행1:9~11).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막16:19). 스데반은 순교하기 직전에 이 모습을 보고 증거했습니다(행7:56).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보다 높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신 그분이 피조물보다 높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하늘보다 높이 되신 것은 그분이 성육신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인데, 이는 천사들이나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천사라 할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셨습니다. 결국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하신 대제사장이셨습니다.
Ⅱ.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대제사장
본문 27절에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6장 6절에서 하나님은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절기인 대속죄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제사장과 가족을 위해서는 송아지를 속죄 제물로 삼으라고 말씀하시고, 백성들을 위해서는 염소를 속죄 제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성결이 백성의 성결보다 더 우선해야 하고,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사가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제사가 불완전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임명을 받은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죄로부터 자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조차도 매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일반 백성을 위한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사의 규정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불완전한 짐승과 그 피가 아닌, 완전한 자신을 희생제물로 제단에 드리셨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지 못하고 대신 짐승을 속죄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제사는 죄를 완전하게 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들은 죄가 생각날 때마다. 혹은 매년마다 되풀이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만약 짐승의 피가 완전했다면 반복되는 제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이 전혀 없는, 죄가 전혀 없는 자신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바로 이 제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제사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속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완전한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해서 자기 백성들에게 죄 없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짐승의 피로 드려지는 희생 제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나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가고자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이 놀라운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오직 그 믿음 하나로 전진해야 합니다. 다른 것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족합니다.
Ⅲ.하나님이 맹세로 세우신 온전하신 아들 대제사장
본문 28절에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된 내용을 반복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가지는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은 율법에 따라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그 제사장의 조건이나 형편을 감안하지 않습니다. 다만 레위 지파에 속했는지, 아론의 자손인지만을 따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온갖 약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유한한 존재였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계속해서 그러한 사람들을 제사장이라고 하는 엄청난 직에 세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율법 이후에 새로운 대제사장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온전하게 되셨다(τελειόω)”라는 것은 그분이 본질적으로 온전하지 못했는데, 후에 온전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분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지만, 그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빌2:6). 예수님도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0:30). 그리고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9).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대제사장직으로서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제사가 완전한 희생 제사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해지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라고 하는 거대한 장벽을 완전하게 제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자리에 기꺼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찢어지심과 같이 찢어버리신 휘장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렸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율법을 따라 세움을 받은 제사장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했습니다.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어가는 짐승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리고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과 자신이 행하신 사역을 믿는 자들을 누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나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따라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유일한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율법을 붙들고 몸부림쳐도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인가를 알려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공로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진정 우리의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