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1.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85)
본문 : 막 15:29-32
제목 :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하찮아 보입니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제가 목사가 되기 전에 교회의 성도들은 담임 목사 한 사람 잘 만나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그 목사가 어떤 신학을 가지고 어떤 설교를 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는 담임 목사의 설교가 가르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그러면 너는 성도들에게 어떤 목사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열심을 낸 부분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고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연구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검증된 신학자들의 유익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개혁주의 목회자 훈련원”이라는 단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기신 성도들에게 좋은 목사가 되고 바른 설교를 하기 위해서 스터디그룹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우리 광성교회와 하동의 갈릴리교회를 중심으로 몇몇 교회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고 양용근 목사 순교 기념사업회에서도 특별사업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세미나를 열고 유명한 신학 교수님이나 목사님을 모시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교수님,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님, 설교 전문가, 교회 성장 전문가, 교회 교육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제가 연구한 복음을 주제로 제가 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음으로 설교하자”라는 주제로 시작해서 이번에는 “더 깊은 의미의 복음으로 설교하자”, “복음서를 복음으로 설교하자”라는 주제로 강의를 잘 마쳤습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강의를 잘 듣고 좋아하지만 개중에는 아직도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듯한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복음으로 설교하면 교회 부흥이 안 된다고 하면서 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참석하는 20~30명의 목사님들은 대부분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복음으로 설교하겠다고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연구하고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목사로서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대부분의 목사들이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이 아닌 다른 것에 중점을 두고 설교하고 심지어는 복음과 반대되는 설교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하찮게 보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라고 외쳤던 사도바울과 달리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복음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당하고 계실 때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까지도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고 욕을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한결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난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다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웃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 일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의 소식인 복음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참고 계시는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십자가를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옛날 그 사람들의 이야기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십자가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하찮아 보입니까?”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질문을 가슴에 담고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닌가 하고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렇게 하찮아 보입니까
본문 29, 30절에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며 하는 말이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참고 계시는데 그런 일 하지 말고 너나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너 자신이나 구원하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나가는 자들은 그저 우연히 지나가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목격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뭔가 좀 알고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보입니다.
이들은 “머리를 흔들며” “아하”라는 감탄사를 넣어서 아주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사형장면을 보면 외면하고 지나가든지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 고통받는 모습을 동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머리를 흔들며 아하라고 하면서 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14장에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거짓 증인이 한 말입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막 14:5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하면서 모욕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비웃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여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사람들이며 성전의 중요성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소중한 일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엄청난 일을 오히려 비난하고 모욕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가장 핵심적인 일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이 너무나 소중하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셨고 그들에게 성전도 주셨고 제사도 주셨고 율법도 주셨습니다. 이 일을 알게 하기 위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 많은 일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모든 역사의 중심에 모든 성경의 중심에 모든 하나님의 하신 일의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핵심적인 곳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 하나님의 하신 일이 하찮아 보이십니까?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핵심인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찮아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구원의 자리로 나오도록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로 알고 믿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을 준비하면서 저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너도 하나님께서 너에게 하신 일이 하찮아 보이냐?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제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보다는 원망할 일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제 편에 서서 일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부끄러워서 잘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가난과 실패와 좌절 막다른 골목에서의 몸부림이 많았던 삶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어려운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며 헌신적인 목회를 했지만 은퇴 후에 그 보상으로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까 그런 고통의 세월이 하나님께서 저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참된 목회자로 살게 하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 고난의 세월이 없었다면 제가 이처럼 십자가의 구원을 감격하며 붙잡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관심사는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로 알고 바로 믿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더 깊이 있게 신앙 생활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삶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찮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여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그렇게 하찮아 보입니까
본문 31, 32절에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주관하는 최고의 책임자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귀가 따갑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드리게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짐승을 잡아 죽여서 제사 드리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제사가 아니라 제물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지금 가진 권력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제사로 드리는 그 제물이 내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임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물로 죽임을 당하는 그 어린 양이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줄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임명된 제사장이 그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일만 하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의 서기관은 율법 학자라고도 하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가장 강하게 외쳤던 사도바울은 구약성경 말하면서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서기관들은 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만 열심을 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이런 중요한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그들이 제사장으로 서기관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놓쳤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다고 해도 그 말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그리스도로 오셨다면 그렇게 힘없게 십자가에 달려 있지 말고 내려와서 구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죄에서 구원 사망에서 구원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질병에서 가난에서 육신의 고통에서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주시는 구원을 하찮게 여긴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인도하면서도 성경을 풀어서 설교를 하면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외면합니다. 복음이 아닌 부스러기 축복을 외치면서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떳떳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서 항상 바른 복음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설교를 들으니까 모든 교회가 다 그런 줄 알고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 외형적으로 그렇게 화려하지 않으니까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라면 만약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시라면 만약에 우리가 믿는 복음대로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으로 인정받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라면 이 복음을 바로 전하는 이 복음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엄청난 일을 하는 너무나 귀한 교회입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천국으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너무나 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의 성도가 되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렇게 하찮아 보입니까
오늘 본문 32절 하반 절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누가복음에 기록된 기사를 통하여 살펴본 대로 한편 강도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기록은 그 이전의 기록입니다. 구원받은 한편 강도도 그가 깨닫기 전에는 함께 예수님을 비난하고 욕했다는 것입니다.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일까요?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의 생명뿐이라면 어차피 지은 죄로 인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고 진짜 형벌이 남아 있고 그 형벌은 영원한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라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그 죄를 용서받는 길이 있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다 그 강도와 같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연구한 사도바울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고 구약성경의 서론과 결론도 모든 인간은 다 율법 앞에 하나님 앞에 죄인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나 오늘날의 괜찮은 사람이라고 의시대는 사람들이나 다 겉으로만 의로운 체 선한 체하는 위선자들일 뿐입니다. 다 속에는 타락한 인간의 악한 습성을 가진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지신 것은 흉악한 죄를 지은 죄인이 가장 쉽게 죄 사함을 받게 하여서 가장 귀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얻게 된다는 것이 가장 기쁜 소식이고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렇게 하찮게 보이십니까?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그렇게 하찮게 보이십니까? 이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의미를 알고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바로 전하는 우리 교회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주의 모든 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하찮아 보이십니까? 날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게 하찮아 보이십니까? 나의 흉악한 죄를 깨끗하게 해주신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영생을 얻게 한다는 이 복음이 그렇게 하찮아 보이십니까? 복음을 믿는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복음의 시작이 되십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핵심이며 나아가서 모든 성경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소중하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