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갈등

 

 

예레미야 207~1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 그는 어떤 면에서 참으로 특별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요, 자신의 조국 유다가 멸망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조국이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성전이 유린을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지금 유다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습니다. 바벨론의 강력한 군사가 유다를 거의 정복하고 이제 예루살렘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바벨론에 정복을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다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예레미야는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아무리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에게 달려가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조국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게 된다는 예언을 하는 일이 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다의 왕에게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루살렘과 유다는 처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여기에서 예레미야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임을 자부하는 예레미야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내 조국과 백성의 평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멸망입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냉랭합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배반자, 매국노라고 몰아붙이며 핍박합니다. 이로 인해 예레미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예레미야의 갈등은 바로 오늘 우리 성도들의 갈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벽 앞에서 우리는 때로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때로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너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에서 우리 성도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했던 갈등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갈등을 이겨낸 비결을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현장에서 만나는 갈등의 상황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성도의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사명 감당과 결과사이의 갈등입니다.

 

본문 7~8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께 원망이 섞인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권유(פָּתָה)”라고 하는 단어는 속이다, 유혹하다, 설득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선지자가 된 것은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아서, 또는 하나님께 설득을 당해서 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자신보다 강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굴복을 당함으로 선지자가 되었다고 푸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 장면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 그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선지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고자 했습니다(1:6).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예레미야에게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선지자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1:7~10).

 

그리하여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당시 유다에게 있어서는 가시와도 같았습니다. 저들의 죄악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 예레미야의 가슴에는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외친다면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이라면 들을 것이라고 하는 기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왕국 유다는 여호와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들이 이방의 우상을 숭배한다고 해도 저들이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상황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미신적인 요소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바알을 비롯한 이방 민족의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왕상 18:21). 어쨌든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전한다면 유다 백성들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어느 정도는 따라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선포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반응은 오히려 조롱이었습니다(7). 치욕과 모욕이었습니다(8). 예레미야가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이었고, 협박이었고, 때로는 목숨의 위협이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37).

 

성도 여러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사명감도 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내가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몸부림치며 나의 길을 가고 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 삶은 더 힘이 듭니다. 내 헌신과 충성에 따른 열매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손가락질합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라가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까? 내가 맡겨진 일을 계속해서 감당해야 합니까? 아니면 여기에서 중단해야 합니까?

 

 

.사명의 계속과 포기사이의 갈등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갈등하다가 내린 하나의 해결 방법은 자신의 사명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다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리라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듣지 않는데 왜 전합니까? 어차피 듣지 않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핍박이요, 조롱과 멸시인데 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고 간다라고 하는 속담처럼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으면 나에게 핍박은 없을 것이 아닙니까? 괜히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과 달리 간다고 해서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 길을 가야만 합니까? 차라리 모든 것을 접어두고 입을 다물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러한 자기의 생각을 현실에 옮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 불붙는 것 같은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אֵשׁ)”은 성경에서 종종 등장하는 표현인데,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있는 유다를 향한 여호와의 분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4:4, 15:14, 17:4). 그렇다면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고자 하는 예레미야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의 불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이러한 마음을 먹고 입을 다물고자 하니 더 죽겠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요동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수치와 모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잔인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아니 선지자로 세우셨으면 선지자답게 사용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백성이 두려워하고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돌을 던지고, 감옥에 가두고,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길을 포기하려고 하는 그 마음에 불같은 마음을 주셔서 견디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에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가만 놓아주지 않으십니다.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십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럴 때 어찌해야 합니까? 사명자의 길을 가자니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를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자니 하나님이 나를 가만 놓아주지를 않으십니다. 하지만 또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할지라도 저 백성들이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앞으로 나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여기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만난 또 하나의 갈등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 또한 오늘 우리 성도가 만난 갈등이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지금 예레미야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일을 포기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시고, 어찌하든지 다시 일어나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일어설 수밖에 없고, 우리가 맡은 사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믿음으로 극복하는 갈등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 이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과연 이러한 갈등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끝까지 나를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럴지라도 다시 일어서야 하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저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예레미야를 박해합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압박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선포하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멸망처럼 비관적인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이라고 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거짓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금 저 바벨론의 손을 들어 유다를 징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유다는 멸망하게 되고, 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예레미야를 박해했던 저 유다 백성들은 큰 치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레미야가 저들에 의해서 조롱과 치욕을 당했지만, 이제는 저들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자신의 갈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나아가 그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너희가 찬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그 찬양의 대상이 여호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가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의 비결은 예레미야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비결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를 부르셨고, 세우셨고,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저 유다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함께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좌절하고 원망하며 푸념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믿음이 예레미야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일을 이루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사람을 모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화려한 건물을 지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다만 나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라고 하십니다.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열매가 없다고 불안해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할 일만 최선을 다해서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까지 내가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은 사명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28:20).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물론 거창한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일만 맡기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볼 때, 작은 일, 보잘것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도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일의 결과에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 결과 때문에 좌절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우리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원하기는 광성의 모든 성도들이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주님 앞에 서는 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