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우월성

 

 

히브리서 87~13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더 좋은 언약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언약을 생각하고자 한다면 이 언약과 비교되는 언약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즉 어떤 한 언약이 있었는데, 분명 그 언약은 좋은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언약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 사이에 맺는 언약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본문 10절에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라는 표현입니다. 이를 우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언약 문구라고 부릅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이 문구가 자주 등장합니다. 때로는 약간 다른 표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문구의 등장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이 문구가 등장하면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말씀에서 이 더 좋은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와 비교되는 언약을 첫 언약이라고 소개하는데, 우리는 이를 옛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의 첫 언약은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고 맺은 언약으로 구약에 등장하는 율법으로 대표됩니다. 그리고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고 맺은 언약으로 신약에 등장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으로 대표됩니다.

 

 

이제 본문은 이 두 언약을 비교하면서 새 언약이 옛 언약에 비해 훨씬 우월한 언약임을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버리고 과거의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훨씬 더 좋은 언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옛 언약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옛 언약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14:6).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새 언약의 우월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새 언약의 필요성

 

 

본문 7절에 저 첫 언약이 무흠(無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다면, 저 첫 언약은 완전하지 못한 언약이다, 그래서 우리는 둘째 언약이 필요하게 되었다.”라고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모세를 중보자로 해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은 완전하지 못한 언약이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인간의 행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28).

 

 

따라서 그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아니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순종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을 그 언약에 따라 그들을 징벌하심으로 이방 나라에 넘기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실패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완전히 폐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은 언약의 내용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 언약의 중심인 하나님의 율법은 지극히 선한 것이었고,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그 언약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의 이러한 언약에 대한 불순종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불완전한 옛 언약을 대체할 새 언약을 준비하셨습니다. 본문 8절에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3131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맺으리라(συντελέω)”라고 번역된 표현은 문자적으로 완전히 성취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언약과 함께 쓰일 때는 언약을 만들다, 언약을 세우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실체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 안에 존재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언약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언약의 실체가 드러남으로 완전하게 성취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옛 언약은 불완전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죄인의 문제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이 필요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죄인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언약을 새롭게 세우셨습니다. 이 새 언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세우신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구원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그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중심입니다.

 

 

 

 

.새 언약의 우월성

 

 

그렇다면 옛 언약과 대조되는 새 언약은 어떠한 면에서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사도는 계속해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옛 언약은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본문 9절에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3132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를 본문에서는 그들이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소망을 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언약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 언약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언약이었음에도 그 언약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사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순종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 언약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그 언약은 자동적으로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에 폐기되었을 때, 저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없었고, 끝내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새 언약은 돌이 아닌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본문 10절에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313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옛 언약은 돌에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돌에 십계명을 새겨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시는 새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새 언약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새 언약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각 개인의 심비(心碑)에 기록하시기 때문에 새겨진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새 언약은 내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성령은 언약 안에 있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로 인식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하게 하십니다.

 

 

3. 새 언약은 전통이나 교육을 통해 유지되지 않습니다.

 

 

본문 11절에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3134절의 앞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옛 언약은 자녀에게 후손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했습니다(6:6~9).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서 가르칠지라도 돌비에 새겨진 것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이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졌고, 성령께서 마음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언약을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서의 지식은 세상이 말하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이 지식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얻게 되는 체험적 지식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지식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더 분명하고, 더 확실하고, 더 견고한 지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4. 새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은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3134절의 뒷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새 언약이 가지는 가장 위대한 효력입니다. 즉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아무리 새 언약 안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불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그 불의, 곧 죄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죄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 역사를 고백하며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8:1)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깊은 것까지도 다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하지만 새 언약 안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또는 아무리 사소한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억에 담아두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새 언약은 우리를 그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세우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 세우신 새 언약은 그 피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는 언약입니다. 따라서 이 언약은 결코 파기될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은 우리의 행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의와 죄를 보시지 않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을 보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요, 위대함입니다.

 

 

 

 

.폐지된 옛 언약

 

 

본문 13절에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 옛 법은 자동적으로 폐기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에 세워졌다면, 모세를 통해 주어진 옛 언약은 자연히 폐기되는 것입니다. 이는 옛 언약이 새 언약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에 옛 언약은 더 이상 가치도, 쓸모도, 법적인 효력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 언약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언약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오직 새 언약으로만 자기 백성들을 상대하십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옛 언약의 완전한 시효의 만료를 의미합니다. 사실 옛 언약은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실 때까지만 존재하는 한시적(限時的)인 용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 옛 언약은 그 생명을 다한 것입니다. 새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면, 그림자인 옛 언약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신 것은 바로 이 옛 언약의 최종적인 폐기를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5:17).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된 그 옛 언약은 이제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옛 언약은 폐기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새 언약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에 근거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제는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우리가 옛 언약 아래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새 언약 안에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백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는 옛 언약을 폐기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 언약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언약으로 대체하셨습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구속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 삼으시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그 언약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십니다. 우리는 그 성령을 통해서 그 언약을 세우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하십니다. 그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언약의 수혜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새 언약을 우리와 맺으신 것은 바로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장차 저 영원한 나라에까지 이어집니다(21:3). 따라서 우리는 이 언약을 붙들어야 합니다. 결코 다른 것을 찾거나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믿고 고백하며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이 우리에게 이토록 위대한 새 언약을 주신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그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마음에 새 언약을 새기고 그 언약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파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