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고린도전서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너 자신을 알라(γνθι σεαυτόν)라는 명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 명연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표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리스의 아폴론에 있는 제우스 신전 입구에 붙어 있는 문구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의 의미에 대해서 누군가가 4가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이해 :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라.

자신의 한계 인식 : 인간으로서의 유한성, 즉 신이 아닌 존재로서의 겸손함을 자각하라.

도덕적, 윤리적 성찰 :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바르게 알고,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

삶의 방향성 제시 :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라.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마지막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은 헛된 것이요, 결국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누가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자신있게 대답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의 대답은 세상의 기준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향이 아닙니다. 세상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대답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대답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본문은 마땅히(οτως)”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는 그러므로, 그런즉, 이와 같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말씀은 3장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323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한 말씀을 확장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존재가 어떤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과 모습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결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나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본문 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라고 했습니다. 또한 323절에서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에 권면하는 모든 내용이 가지는 권위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왜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보내야만 하고, 또한 고린도 교회 바울이 보내는 이 편지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절에서 강조되는 표현은 그리스도의(Χριστο)”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소유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소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에 있어서 소유의식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즉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속한 사람과 지방의 관리에게 속한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가지는 자존심이나, 권위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는 사도 바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 바로 우리에게도 동일한 문제입니다.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구에게 속해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태에 잉태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예정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성령을 통해서 부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이 된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포함한 전부가 우리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소유가 되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를 자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존재입니다. 과거 우리가 예수 밖에서 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 세상의 죄에 빠져서 살 때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한다면 우리는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하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가장 귀중하고 놀라운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을 맡은 일꾼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면, 다음으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즉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며, 그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먼저,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일꾼(πηρέτης)”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배의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킵니다. 당시 이 노예들은 중죄인이거나 가장 낮은 계급의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예들은 한번 이 자리로 내려가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히려 이 단어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서 벗어나는 것도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내 유익을 위해 일할 수도 없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우리는 오직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꾼, 즉 노예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이 워낙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자요, 통치자요, 최후의 심판자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음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는 하나님의 비밀(복음)을 맡은 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나를 일꾼으로 삼으신 이유는 당신의 비밀, 곧 복음을 맡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맡은 자(οκονόμος)”는 앞에 나타난 일꾼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입니다. 일꾼은 노예 신분을 강조한다면, 맡은 자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일꾼의 자리에만 머무르는 자들이 아니라, 영적 권위를 가진 청지기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신분, 즉 일꾼과 맡은 자의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비밀(μυστήριον)”은 본래 헬라의 종교에서 입문자들에게만 공개하는 신성한 의식이나 교리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 이 단어를 가져다가 교회에서 시행하는 성례전의 집행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복음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은밀한 지식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역사에 관한 지식입니다.

 

 

본래 이 비밀은 본래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기 백성 구원이라고 하는 위대한 역사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공개된 비밀이 되었습니다(1:26). 하지만 이 비밀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비밀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들만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밖에 있는 자들은 그 어떤 지혜와 노력으로도 깨달을 수 없는 비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만 공개된 비밀, 즉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비밀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비밀을 맡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비밀을 천사와 같은 존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바로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비밀을 맡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내 지식과 경험은 그 비밀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에 놓인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나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귀한 비밀을 맡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요, 나는 단지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왜 예수를 믿었고, 내가 무엇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고,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하는 자입니다.

 

 

,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오늘을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제 이에 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본문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에 따라서 번역한다면 그리고 맡은 사람들에게 구하는 것은 충성하는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잡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모습은 주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그 일에 대해서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맡기셨습니다. 나 같은 자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비밀을 맡기셨습니다. 그 비밀을 통해서 자기 백성의 구원이라고 하는 위대한 목적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음을 드러내는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한 복음,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는 이 복음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로 복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으로 그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통해서 그 복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복음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 복음에, 맡겨진 비밀에 충성하는 일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 충성이라고 하는 단어가 헬라어로 πιστός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충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경에서는 믿음이라는 단어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굳게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내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내 안에 있는 것이라면, 충성은 그 믿음이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그리고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주인에 대한 믿음, 주인의 일에 대한 믿음, 주인의 목적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충성입니다. 이 충성만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임을 고백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함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나는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으셨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 곧 복음을 맡은 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맡은 일에 대해서 충성해야 하는 자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나에게 맡겨진 일에 믿음으로 충성함으로 주님 앞에 설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는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