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1. 광성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91)
본문 : 막 16:14
제목 :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시니.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잘 아는 목사님이 최근에 “부활 그 확실한 많은 증거들”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제가 모처럼 추천서를 써 준 책이라서 곰곰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50여 편의 부활에 관한 설교를 큰 책 500페이지 분량으로 출판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활에 관한 기록은 다 망라한 것 같고 이 책만 다 읽으면 부활에 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부활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최종국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마지막 날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지복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이고 부활은 많은 확실한 증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늙고 병들어서 죽는 이런 몸이 아니라 늙지도 병들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이런 삶이 아니라 정말로 행복한 삶을 영원무궁토록 살기 위하여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정든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하는 죽음이라는 고통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전 재산을 다 바쳐야 한다면 그까짓 것 다 바치고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한다고 해도 내놓을 수 있는 엄청난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합격입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그 믿음의 대가로 이런 엄청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까?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잘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투자도 하고 대가도 치르라고 하면 잘 믿겠는데 그렇게 엄청난 것을 이렇게 쉽게 준다고 하니까 더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과 그것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믿음의 중요성을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을 믿지 못하는 이유들을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부활과 영생은 우리 성도에게 최종 최고의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을 꾸짖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님 지상 사역의 최고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중요한 부활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꾸짖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행복하게 잘 살고 못살고 하는 문제라면 그렇게 꾸짖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바르게 살고 못살고 하는 문제라고 해도 그렇게 꾸짖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을 소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꾸짖으셔서라도 바로 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을 대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지만,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우는 마가복음은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불쌍한 우리들을 위해서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비참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에게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성경 기록의 목적이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고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불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부활과 영생보다는 다른 것들을 교회에 다니는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 세상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목적을 위해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의 핵심을 모르고 엉터리로 해석하고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돈이나 명예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엉터리로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타락한 모습이 그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과 영생이 그렇게 하찮아 보이십니까? 변질된 교회 변질된 설교를 하는 엉터리 설교자들을 향하여 던지고 싶은 말입니다. 그깟 세상 명예 그깟 세상의 부요함을 위해서 이렇게 소중한 것을 소홀히 여기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말입니다.
부활은 너무나 확실하고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은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을 비롯한 복음서와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읽어만 보면 다 알 수 있는 부활에 관한 많은 증거들이 확실한 증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어쩌다가 한두 마디 기록된 것이 아니라 부활이 중심이 되는 주제로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마가복음 강해 설교를 통해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는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니까 잘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중요한 것으로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 재판은 당시의 유대교 최고의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로 구성된 공의회에서였습니다.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까지 사형선고에 가담했습니다.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누가 보아도 예수님의 죄는 찾을 수 없었고 그러면서도 굳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남의 죄를 대신할 수 없고 아무나 대신 죽는다고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역사 속에서 진행된 일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된 핵심적인 그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수많은 유대인이 목격했습니다. 당시 온 나라를 다스리던 로마의 빌라도 총독과 많은 병사에 의해서 집행되었습니다. 각 나라에서 온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목격했습니다.
부활의 증거들이 차고도 넘칩니다. 수많은 목격자 비어 있는 무덤 천사의 증언 부활 이후 제자들의 목숨을 건 증언들이 그 증거이고 무엇보다 성경의 기록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성경 자체를 믿지 못합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그냥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어서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성경이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사실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이 그냥 누구의 사상이나 철학을 가지고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세계의 여러 가지 역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역사를 B.C.와 A.D. 즉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눕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의 기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미술의 기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의 기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엄청난 놀라운 기적들이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기적들이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행한 많은 기적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이 기적적인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오늘날도 여기저기에서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선교 현장에서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기적이 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많은 기적적인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적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우리 속에 살아계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완악한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꾸짖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지 못한 이유를 마음이 완악한 것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것 때문에 그런 확실한 증거들을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서 완악(頑惡)하다는 말은 완고할 완(頑)자와 악할 악(惡) 자를 써서 성질이 고집스럽고 악할 때 쓰는 말입니다. 고집스럽게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고 그것이 악한 일에 그럴 때 완악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주장과 다를 때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참으로 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사는 사람은 그 마음도 악하다는 것입니다.
완악함으로 번역한 헬라어 스클레로카르디아(σκληροκαρδία)도 굳은 마음의 완고함 정도로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완악함은 “하나님의 구원하려는 의지에 대한 선포를 완고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을 나타낸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제언과 요구, 그리고 동료 인간들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배타성을 말한다.”라고도 했습니다.
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아주 특별한 일에 마음을 열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5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고집이 완악함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선포해도 완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 때문에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완악함이나 고집은 비교적 잘나가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거나 좀 성공했다고 생각하거나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거나 이 세상에서 재미있게 잘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완악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교회의 성도 중에도 이런 사람들은 비교적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노력해서 얻은 업적 때문에 부활의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 성공으로 누리는 이 세상의 행복 때문에 부활 신앙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성공하셨습니까? 그 성공이 영원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은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고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가지 못합니다.
“모자무싸”라는 연속극이 있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연속극 제목을 모자무싸로 표현한답니다. 이 연속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내용은 잘 모릅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신이 잘난척하려고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음에 가슴 아파한다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자주 말씀드렸지만, 사업할 때 일본의 거래처 공장에 가서 “가치 있는 상품을 창조하자”라는 현수막을 보고 평생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봐도 별스럽게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못했고 조금 잘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괜히 고생만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모자무싸”를 모두가 자신의 무능력함과 싸우고 있다는 말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저 자신이 너무나 무능력하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 앞에서 권력 앞에서 성공 앞에서 나는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질병 앞에서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완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만 꺾고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손들고 그리스도께로 나와서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만 가지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가치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여러분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흉악한 죄인이 의인이 되게 하는 능력 지옥에서 형벌이나 받아야 할 사람이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할수록 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더 좋습니다. 그럴수록 복음을 믿는 믿음이 엄청난 가치를 주며 엄청난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엄청나게 사랑하시고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지만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지위와 부활과 영생이라는 엄청난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부활과 영생을 주십니다. 이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끝까지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