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인내하라
히브리서 10장 26~39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보통 “신앙생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활”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과 삶이 항상 함께 합니다. 우리의 삶은 믿음을 따라가고, 믿음은 삶을 통해서 고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삶이 다르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이 항상 같이 갑니다. 그것도 분명한 방향과 목적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가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인내하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배교자에 대한 심판의 경고
우리는 이 서신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놓인 상황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는 안팎으로 다가오는 혼란과 박해의 임박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복음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성령의 역사를 버리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자들에게 본문에서 사도는 또 다시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1. 배교자가 맞이할 결말
본문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진리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속죄 제사가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를 이룬다는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버리는 것을 가리켜 “배교(背敎)”라고 합니다. 결국 이들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의 운명은 비참합니다. 저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언제일지도 모르는 심판,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임할 그 심판을 두려움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저들이 맞이하는 심판의 결정적인 모습은 바로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입니다. 이 지옥불의 형벌은 예수님의 말씀(마5:22)과 요한계시록 20장에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에 등장합니다.
2. 배교자의 범하는 죄의 모습
본문 29절에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배교자들이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는 자들입니다. 즉 자신을 위해서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역하는 것은 그분과 그분의 사역을 발 아래에 놓고 짓밟는 것과 같은 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저들은 새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분명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면 더 이상 그 피의 효력을 입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셋째로,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성령은 분명 진리의 영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또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게 하시며, 거룩한 열매들을 맺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령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은혜 거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배교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형벌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본문에서 “너희는 생각하라”라는 말씀은 이 경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앞의 28절에서 사도는 구약의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어긴 자들에게 가해진 형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는 율법을 어긴 자들이 두 세 사람의 증인으로 인해 그 형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 구약의 모든 율법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멸시하고 부정하는 자들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성
본문 30~31절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신명기 32장 35절과 3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친히 당신을 “원수를 갚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것이 전적으로 당신의 소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깨뜨린 자들에게 반드시 복수하십니다. 이는 저 배교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 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긴장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일은 우리가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놓치는 순간 우리에게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가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다면,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가혹하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Ⅱ.고난 받는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본문 32절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예수를 처음 믿을 때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또한 저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했고, 그 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날에 저 성도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었습니다(33a). 대적자들은 성도들을 마치 극장의 무대와 선 배우들처럼 공개적으로 세워놓고 비방하며 조롱했습니다. 이는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유대인들이 했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대적자들은 공개적으로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 하나의 사실 때문에 성도들은 사회에서 멸시를 당해야 했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전날에 저 성도들은 자신이 박해를 당하면서도 다른 박해받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습니다(33b). 저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저들은 다른 성도들이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을 때 저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다른 성도들의 여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했던 것입니다.
전날에 저 성도들은 갇힌 자들을 동정했습니다(34a).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 때문에 갇힌 자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저 옥에 갇힌 자들을 부지런히 찾았고 위로하며 격려했고 저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분명 이러한 삶은 대적자들에게 드러나게 되고 자신에게도 또한 어려움이 닥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요, 자매가 된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전날에 저 성도들은 자신의 산업을 빼앗기는 것조차도 기쁘게 여겼습니다(34b). 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신앙 때문에. 그리고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과 함께하는 것 때문에 자신들의 사유재산까지도 강제적으로 몰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 성도들은 이러한 일을 오히려 기쁘게 여겼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시선이 땅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했습니다. 그곳에는 이 땅의 것보다 더 좋고 더 영원한 산업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비록 발은 이 땅에 디디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시민권이 저 하늘에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빌3:20).
따라서 사도는 지금 그 전날의 일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처음 믿음을 회복하라고 권면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권면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더욱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전날에 그 힘겹게 싸웠지만 승리했던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때 가졌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환난을 당하고 있지만 전날의 승리를 기억하면서 믿음을 지킬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결과에 대하여 본문 35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과거에도 당했던 박해를 이겨냈듯이 지금도 그 믿음으로 굳세게 이겨나가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믿음이, 그 담대함이 하나님 앞에 큰 상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큰 상”은 ‘큰 보상’입니다. 이 상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라면 누구라도 받게 되는 상입니다. 이 상에 대해서 바울은 “의의 면류관”이라고 했고(딤후4:8), 예수님은 “생명의 관”이라고 했습니다(계2:10).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게 붙잡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의 형제, 자매를 돌보아야 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한 성전이요, 한 가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Ⅲ.끝까지 믿음 안에서 인내하라.
본문 36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약속을 받은 성도들에게 “인내하라”라는 권면을 합니다. 여기의 “인내”는 자신이 믿고 확신하고 있는 상태에서 견고하게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 인내는 종말을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 가운데 하나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흔들리는 성도들을 향해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고, 그 길을 다 걸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을 믿으며 인내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인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인내의 경주를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1. 인내의 시간은 잠깐입니다.
본문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시리니(ἥκω)”라는 표현은 단순히 오시는(come) 정도가 아닙니다. 이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대적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계3:3). 따라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오심”이요, 그를 대적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의 “오심”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가 멀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잠시 잠깐 후”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주 임박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 안팎으로 다가오는 환난으로 인해 흔들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우리가 조금만 참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와 영광이 주어지겠구나”라고 하는 용기를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 재림의 역사는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본문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서 동일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말씀이 아무리 세상이 우리 성도들을 박해하고 힘들게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진정 믿음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는 이 믿음이 교리적인 차원에서 사용되었지만, 본문에서는 실천적인 차원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성도에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도라고 하는 이름도, 성도의 삶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분명한 대상과 분명한 역사 그리고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믿음을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고백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없거나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다면, “우리는 멸망 가운데로 뒷걸음치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원한 구원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진 자다.”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 줍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은 박해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졌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즉 주님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예수님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편에서 볼 때 사도들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나 같은 시대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믿음을 가진 자라면 우리는 인내로서 우리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합니다. 그 믿음의 경주가 끝나면 우리에게는 분명하게 약속된 상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로 인내하게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위협해도 우리는 인내합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된 상급으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푯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견고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내하며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 후에 오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칭찬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모든 성도들이 이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달려감으로 주님 앞에 섰을 때, 큰 칭찬과 상급 그리고 영원한 영광과 생명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