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위대성

 

 

 

히브리서 111~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보통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러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았던 선진들의 증거를 나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선진들의 믿음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첫 번째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실 이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본문을 나 자신과 적용시키는데 있어서 많은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편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편에서 해석하고 내 편애서 적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본문은 10장과 연결해야 합니다. 1036~39절에서 말씀했던 그 믿음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성도가 그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선진들은 그 믿음을 어떤 모습으로 증명했을까요?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의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믿음이란 무엇인가?

 

 

본문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제시할 수 있는 대답입니다. 그리고 이 대답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생각할 때, 이 말씀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체가 된다면 본문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주체로 한다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들의 실상이요 하나님께서 현실로 마련해 놓으신 것들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 오늘 우리는 어느 편을 택해야 할까요? 본문의 주체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본문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미 마련해 놓으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것처럼, 그것을 마치 손에 잡은 것처럼, 그 실체를 우리에게 경험시켜 주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꿈꾸는 것, 우리가 이루는 것을 통해서 믿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것으로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 실제적인 예로 본문 3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지 않는 학계에서는 우주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진화론이라고 하는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는 만물의 출발을 우연이라고 하는 현상을 가정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생물은 아주 기초적인 분자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진화론을 전적으로 배격합니다. 창세기 1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시작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 창조를 직접 본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창조 현장에 함께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진화론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창조론을 단순한 설화나 민간에 내려오는 이야기들의 집합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주 만물이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임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이 지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즉 우리는 창조의 현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창조를 단순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을 믿음으로 그 창조의 역사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우리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체입니다, 우리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역사의 일부인 것입니다(2:8).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견고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믿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거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서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선진들의 증거

 

 

본문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앞에서 말했던 그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었던 선진들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서 믿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1. 아벨의 증거 - 제사

 

 

본문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으므로 마땅히 그 소산물로 제물을 삼았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으므로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까요? 그 제물에 문제가 있었을까요? 훗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제물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저 두 사람의 제사에서 가장 분명한 차이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고, 가인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그 믿음으로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믿음이 없었기에 악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들의 삶이 포함된 제사에 하나님이 다르게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2. 에녹의 증거 - 동행

 

 

본문 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 524절에 기록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에녹은 분명 이 땅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김을 받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말씀하신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흙에서 온 사람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신 말씀과 상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한다거나 에녹을 죄가 없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는 당 시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에녹에 어떤 과정이나 모습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다만 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은 에녹이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이 엄청난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3. 노아의 증거 - 방주

 

 

본문 7절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창세기 6장부터 기록된 홍수의 심판과 관련된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가득함을 보신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시고 그에게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을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하나님의 이 명령을 들을 때, 세상이 물로 심판을 당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심판할 만한 큰비가 내릴 아무런 징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경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경외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경외는 없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방주를 지음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선언했습니다. 그때 세상은 노아의 정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고, 그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삶으로 고백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제물로, 한 사람은 동행으로, 한 사람은 순종으로 대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전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무신론입니다. 무신론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존재하시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십니다. 저 믿음의 선진들의 시대에만 존재하시고 오늘은 자취를 감추신 것이 아닙니다, 아벨 시대의 하나님, 에녹 시대의 하나님, 노아 시대의 하나님은 오늘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입니다.

 

 

본문에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반드시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삶에 대해서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위대한 상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창세기 151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이기에 우리의 믿음에 구원으로 보상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이 소유하신 온갖 은혜와 복으로 함께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 하나님이 이 시간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셨음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저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정체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그러한 믿음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나타내십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합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나는 믿음의 사람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까? 나는 믿음을 삶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위대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