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과 그리스도의 피 제사

 

 

히브리서 913~22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시간에 히브리서 9장의 앞부분을 통해서 하늘 성소에서 사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지상 성소와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하늘 성소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지상에 있었던 성소는 하늘 성소의 그림자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해서 지상 성소의 역할은 끝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잡아야 하고, 결코 다른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그 피 제사가 가지는 효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옛 언약에 따른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의 효력도 대단했습니다. 비록 짐승의 피였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그 어떤 죄도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는 반복적으로 시행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는 옛 언약에 따른 피 제사와는 차원이 다른 제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는 옛 언약을 종결시키고, 새 언약으로 대체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가 오늘 우리를 구원하는 새 언약의 효력을 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를 구약의 제사와 비교해서 설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 제사의 결과가 오늘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믿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새 언약과 그리스도의 피 제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그리스도의 피가 가진 효력

 

먼저 본문 13절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했습니다. 레위기 19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출산, 여러 가지 질병, 시체와의 접촉, 악행 등의 이유로 인해 부정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가장 크고 심각한 부정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여기의 부정함(κοινόω, טָמֵא)”은 위생적인 더러움이 아니라, 종교적인 더러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되고, 부정한 사람은 희생 제물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7:19-21).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부정함의 문제는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제사와 제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부정으로부터 정결하게 되는 의식이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정하게 되면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부정에서 정결하게 되어야만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에서 정결하게 되는 데는 염소와 황소의 피암송아지의 재를 탄 물이 필요했습니다. 염소의 피나 황소의 피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물로써 필요한 것이고, 암송아지의 재를 탄 물은 제사장이 그 부정한 자에게 직접 뿌리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이 의식을 통해서 어떤 부정함을 입었든지 정결함을 얻게 되고, 그 이후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결 의식은 그 자체로 의식이었을 뿐입니다. 이 의식을 행했다고 해서 그 양심까지 깨끗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구약의 제사와 의식은 인간의 외적인 부분에 제한적으로 적용된 것이었을 뿐이지 본질적인 부분까지는 그 효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정결 의식을 거친 자를 하나님은 거룩하다고 인정하셨고, 그가 드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오늘의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짐승의 피와 짐승을 불살라 얻은 재를 섞은 물을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들의 육신을 정결하게 했다면, 아무런 흠도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죄인들을 정결하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구약의 그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짐승의 피와 잿물은 외적인 부정으로부터 정결하게 하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옛 언약 아래에서는 불완전했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 아래에서는 완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짐승의 피는 죄인을 완전히 정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 피는 짐승의 피일 뿐이지, 사람의 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는 의식적인 역할에 그쳤습니다. 그 피가 비록 부정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정결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인 죄의 문제까지 완전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짐승의 피를 드려야 했고, 그 잿물을 뿌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 피는 죄가 전혀 없는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알지 못하시는 분이시며, 죄를 지으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의 피를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죄를 가리움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온갖 좋은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가진 위대한 능력입니다.

 

 

.새 언약과 그리스도 피의 관계

 

본문 15절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86절에서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경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강조된 표현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에 대한 것입니다. 즉 옛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는 유한한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소개함으로 그분이 하나님 자신임을 예언했습니다(9:6). 그리고 예수님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14: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는 첫 언약 아래에 있던 죄인들을 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모세를 중보자로 세운 옛 언약의 속죄 제사로 영원하게 속할 수 없었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가 가져올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에 대한 약속을 얻게 합니다. 여기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이 부르심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었고, 복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인해 확정되었습니다. 마치 유언이 죽음에 의해서 확정된 효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제사를 드리지 않으셨다면,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새 언약의 효력은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피 제사는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 죽음이 가져온 효력은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당신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새 언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하는 법적인 능력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죽으심으로 드리신 피 제사는 옛 언약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죄의 문제는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바로 새 언약입니다. 이 새 언약 아래에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제사를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자는 그 어떤 죄까지도 다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버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가 죄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능력입니다.

 

 

.옛 언약과 짐승의 피

 

본문 18절에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옛 언약도 피로 세웠습니다. 본문 19절에서 21절에 나타난 내용은 출애굽기 24장에 기록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소를 잡아 그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그 피를 가리켜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24:8).

 

결국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그 첫 언약은 피로 말미암아 그 효력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피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언약을 깨뜨리는 자도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피를 뿌리는 언약의 체결은 언약의 당사자들에게 언약의 견고성을 의미합니다. 즉 그 언약은 결코 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요, 만약 그 언약을 깨뜨리면 그 깨뜨린 당사자가 그 피의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언약에 끝까지 충실하지 못했고, 그 결과 저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결국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와 관련된 말씀들을 결론해서 본문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부정함은 죄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피 흘림, 곧 죽음이었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했습니다(6:23).

 

성도 여러분! 지금 사도가 옛 언약 아래에서 짐승의 피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얻게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즉 짐승의 피도 죄와 부정에서 정결함을 얻게 했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를 믿는 자들의 죄를 완전하게 씻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떡을 나누신 후에, 잔을 들고 제자들에게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6:28). 여기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흘리시는 피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피도 죄 사함을 위한 피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받게 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피라는 것입니다. 다만 구약에 나타나는 짐승의 피는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피 흘림은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장차 오셔서 자신들의 죄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즉 더 이상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짐승이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양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 문제가 영원히 해결될 수 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을 때(1:29), 저 유대인들은 아마도 엄청난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피도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 언약도 깨뜨려질 수 없는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전제로 하는 언약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새 언약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심비(心碑)에 새겨진 것이기에 결코 깨어질 수 없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연약한 인간의 행동에 좌우되는 언약이 아닙니다. 이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을 옛 언약보다 더 견고하고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을 근거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으시고 우리와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이 언약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 안에 있는 우리 각 사람을 향해 너는 나의 백성이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건입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선물입니까?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까지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들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렇게 위대한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요일 4:10).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바로 나의 죄 때문에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 안에서 더욱 견고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새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새 언약 안에 있는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