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
히브리서 7장 1~3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우리의 이해 안에서 해석하려고 하는 접근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과학적인 내용이 들어있지만, 성경이 과학책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철학적인 내용이 있지만, 성경이 철학책은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가 들어있지만, 성경이 역사책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의 이성을 기준으로 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됩니다.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철학이나 역사를 잣대로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사실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이 땅의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과학과 일치합니다. 우리의 이해력 안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논리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특히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는 우리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그것을 억지로 풀기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성경의 난제 가운데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성경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멜기세덱(מַלְכִּי־צֶדֶק;Μελχισεδέκ)”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신비로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크고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랐다”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히5:6,10,6:20).
특히 지금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이야기함으로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삶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등장하는 그 어떤 대제사장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보다도, 심지어 이 신비한 대제사장 멜기세덱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를 버리고 예수 이전으로, 복음 이전으로, 되돌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영원한 심판과 멸망으로 가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고, 예수만을 향해서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멜기세덱의 이력서를 보는 듯한 말씀입니다. 즉 멜기세덱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한 대제사장인가를 보여 줍니다.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와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왕이요 제사장인 멜기세덱
본문 1절에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2절에서는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이 멜기세덱에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브람이 그를 알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있기 전에 제사장이었습니다. 즉 최초의 임명직이었던 대제사장 아론이 있기 전에 이미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왕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였기에 그는 왕이자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이스라엘 종교 제도 너머에 존재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레위 자손은 제사장은 될 수 있었지만, 왕의 직무를 맡을 수는 없었습니다.
첫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אֵל עֶליוֹן)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높으신(עֶליוֹן)”은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인데,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압도적인 위엄을 드러내는 명칭입니다. 특히 이 명칭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명칭이 사용될 때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전능성과 보편성, 그리고 불변성을 의미한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가나안 땅에는 많은 우상을 섬기는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대에 멜기세덱이 어떻게 여호와를 섬기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정확한 해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섬기게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라고 하는 신학적인 차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은 존재했습니다. 당시에 가나안 땅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존재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에도, 더 훨씬 전인 모세의 이전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존재했습니다(엡1:4~5).
그 백성들 사이에서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와 그의 직무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에는 신비(mystery)에 싸여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의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에서 나타납니다. 이 이름의 문자적인 뜻이 바로 ‘의의 왕’입니다. 여기에서의 “의(義)”는 공의나 정의를 가리키는 단어로 윤리적, 도덕적인 표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이 의의 표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성품과 뜻입니다. 또한 이 의가 가장 요구되는 사람은 재판관들이었습니다. 재판정에서의 판결은 언제나 진실해야 하고 편견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했습니다.
멜기세덱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표준을 지키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백성을 성실하게 대했고, 그의 판결은 언제나 공평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고전1:30). 또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됩니다(롬8:33). 예수 그리스도는 지기를 믿는 모든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의의 왕이십니다.
셋째는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살렘(שָׁלֵם;Σαλήμ)”은 그대에 불렸던 예루살렘의 별명이라고 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살렘이 어디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평화, 평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을 평강의 왕이라고 한 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가 멜기세덱을 평강의 왕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단지 문자적인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사9:6).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이 부른 노래의 주제가 바로 평화였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믿는 모든 자에게 평강이라고 하는 엄청난 선물을 주셨습니다(요16:33, 20:21).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요, 왕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대제사장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로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강을 누리게 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면 결코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이루고,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는 의와 우리가 누리는 평강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Ⅱ.아브라함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본문 1~2절에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창세기 14장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는 아브람과 롯이 헤어진 후입니다. 그때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의 왕과 그 주변의 왕들이 연합하여 저 북쪽에 위치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배반함으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연합한 왕들이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왕들에게 패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그 포로들 가운데는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 그리고 자신과 연합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군사들을 데리고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단까지 쫓아가서 적들을 쳤고, 그 위인 다메섹 옆의 호바까지 쫓아가서 적들을 치고 롯과 그의 가족을 구했고, 빼앗겼던 재산을 되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
아브람이 대적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아브람을 맞이한 사람 가운데 바로 이 멜기세덱이 등장합니다. 멜기세덱이 전쟁에 돌아오는 아브람을 위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본분은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한 자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4장 19절에서 멜기세덱은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아브람을 축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람을 축복했다고 하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멜기세덱에 아브람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7절에서 사도는 이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라고 함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축복의 권리는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낮은 위치에 있는 자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했다면 이는 그가 아브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자요, 이는 아브람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멜기세덱은 아브람의 중보자였다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실 것을 간구했다는 사실은 멜기세덱의 보여준 중보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보다 우월한 제사장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사도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자손을 따라서 되는 제사장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
창세기 14장 20절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십일조에 대한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훗날 야곱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창28:22). 이는 자신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도 자신의 소유가 멜기세덱에게 속한 것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나의 모든 소유가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하는 표시로 십일조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이 모습은 멜기세덱이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였음을 고백하는 행위였다고 할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을 맞이하는 멜기세덱이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십일조를 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가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멜기세덱이 레위 자손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즉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멜기세덱이라면 그는 마땅히 그의 후손들인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훗날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율법에 따라서 자기 동족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지만, 멜기세덱은 율법의 규정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권위로 아브람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멜기세덱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비한 인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보다 더 우월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백성들을 위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친히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대제사장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제사장 사역 때문입니다.
Ⅲ.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
본문 3절에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멜기세덱의 신비로움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에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라는 표현은 본래 ‘고아, 사생아. 불량배 등’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적 존재에 대해서 사용하게 되면 그들의 초자연적인 출생을 의미하는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멜기세덱의 혈통이라든지, 부모, 출생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영원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라는 표현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직무를 시작하고 끝내는 정해진 시기가 없는 영원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은 30세에 시작하여 50세에 그 직무를 마쳤습니다(민4:23). 하지만 멜기세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즉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묘사한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레위 계통의 그 어떤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서는 안 됩니다. 멜기세덱은 어디까진 그리스도의 그림자일 뿐이지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따라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도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이는 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제사장으로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제사를 완전하셨습니다. 특히 자신의 피를 제물로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죄를 위한 제사가 다시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는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멜기세덱이 위대한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무리 신비한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떤 대제사장보다도 우월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대제사장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만을 의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든 광성의 성도들이 우리의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