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 19. 추수감사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감사1)
본문 : 고전2:12
제목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만든 추수감사주일입니다.
1년 동안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를 바르게 안다면 특별한 날을 정할 것이 아니고 항상 감사를 드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구태여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을 필요도 감사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사절을 정하고 특별히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들을 말하고 감사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 인생들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르고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은혜를 입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들은 그렇게 하시지만 실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비교적 여유가 좀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와주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저의 친척 중에 비교적 좀 잘 살아서 도움을 좀 많이 주고 사신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도움을 주었다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그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흉을 보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었는데 작게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모님의 은혜를 받고 살았지만 부모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해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10년째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수많은 아이들 가운데 아직 한 사람도 목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러 온 아이는 없습니다.
열 가지 스무 가지 잘 해 주다가 어쩌다 한두 번 타이르거나 큰소리로 뭐라고 하면 그것이 서러워서 목사님 나쁘다고 원망을 하고 다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속을 썩이고 말을 안 들었는지는 생각도 안하고 손바닥 한두 차례 때렸다고 폭력목사님이라고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나쁜 습성 중에 하나가 은혜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은혜 베푼 사람의 나쁜점을 찾아서 욕을 함으로 자기가 감사하지 않을 핑계거리로 삼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늘 감사하면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존재하고 있는 모든 원인이 우리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우리의 육신의 생명 우리의 영혼 우리의 가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나날들이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신세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고 자기 혼자 다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이 타락한 인생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성도라는 귀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도 어쩔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의 습성이 배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가 감사할 이유들을 살펴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강화시키고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금년 1년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이 참 많습니다.
아 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에 보이는 축복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 축복에 감사할 일이 특별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육신적인 것보다는 더 중요한 감사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더 많이 생겼다 존경을 더 많이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출세를 했다 이런 것들 보다는 영적인 면에서의 축복들을 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삶에 있어서의 축복에 대한 감사를 하다가 보면 때로는 원망을 할 일이 생깁니다.
인생의 삶이 늘 잘 될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의 삶은 바르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시험거리가 많고 힘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제 돈 좀 많이 벌었다고 감사합니다 하고 오늘 좀 시원치 않으면 노 땡큐 하는 것은 바른 감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의 감사는 영적인 것에 대한 감사가 감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범사에 항상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진정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되새기면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세상의 영"은 악령 즉 사탄 마귀 귀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온 영"은 성령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항상 아주 뚜렷한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 분류 중에 하나가 성령님을 받은 사람과 사탄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악한 영 사탄의 영 귀신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두 종류 중에 하나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나는 성령도 악령도 받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귀신이 든 사람도 어떤 사람은 평생 그 사실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내림 굿을 해서 무당이 되어야 할 정도로 강하게 역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귀신을 모시고 귀신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으면 병이 납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도 어떤 사람은 방언을 하고 입신을 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런 눈에 보이는 형상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령님을 받았으면서도 평생을 긴가민가하게 표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신의 영을 받아서 그가 시키는 대로 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도 대부분은 성령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그 두 종류의 사람들 간의 차이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을 너무나 확실하게 구별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확실하게 구별시킨 예 중에 하나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모든 민족들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을 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은 모조리 다 천국으로 들여보내고 염소는 모조리 다 지옥으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아주 쉽습니다.
양과 염소는 비슷하게 생긴 것 같지만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염소는 태어날 때부터 염소로 태어나서 평생을 염소로 살다가 염소로 죽는 것입니다.
양도 양으로 태어나서 양으로 살다가 양으로 죽는 것입니다.
염소가 양처럼 온순하게 살았다고 양이 된다거나 양이 난하게 살았다고 염소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양은 언제나 양이요 염소는 언제나 염소입니다 아주 뚜렷하게 구별이 되기 때문입니다.

염소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는 뿔이 있고 성질이 고약하다는 것을 알 리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가는 길도 알지 못하고 생긴 대로 살다가 생긴 대로 죽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도 모르고 자신이 받을 형벌도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양이 자기가 얼마나 온순하지 모르고 살 것입니다.
자기가 받을 복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뿔이 있고 힘이 센 염소를 부러워하면서 그 흉내를 내면서 살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성도가 그렇습니다.
성도가 얼마나 귀한 신분인지 그 받을 복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모르고 삽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은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십자가의 진리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점점 성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우리 인생이 사는 목적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게 됩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천국을 알고 그 천국을 목적지로 삼고 그 천국을 향하여 살게 됩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를 알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세상 사람들의 부귀영화를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너무나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받음으로서 변화된 우리의 신분 우리의 삶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목적지가 너무나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값없이 주셨습니다.
본문 말씀 중에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많은 것을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 많은 것 그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구나 태양이나 비나 바람이나 공기나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일반적인 것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앞서서 말씀 드린 대로 성령을 받지 못하고 악령을 받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비웃는 사람들에게까지 은혜로 주십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에게는 죄악에서 구원이라는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 은혜로 주셨다는 말은 쉽게 값없이 거저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대가나 헌신이나 의로움의 여부와 상관이 없이 거저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간에 믿음이 없는 성도들은 목사님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교회에 헌금하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거저라고 하십니까 나도 돈 낼만하게 냈습니다 공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실 헌금을 강조하는 교회들은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엄청나게 광고를 하고 은근히 감사헌금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미리 작정을 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사업목표를 정하고 그 액수에 도달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교회의 온풍기를 삽시다 아니면 선교지에 뭘 보냅시다 혹은 구제를 합시다 라고 목적을 정하고 특별히 헌금을 하기도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의 감사헌금은 사실 평소보다는 달라야 합니다.
보통 한 달 십일조 정도의 액수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주 드리는 감사나 특별히 일 년에 한번 드리는 감사가 같거나 비슷하다면 추수감사헌금의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것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 아닙니다.
때로는 나도 그래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원리인데 그렇게 가르치지 못해서 성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염려도 있습니다.
때로는 성의없는 헌금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값없이 받은 것을 헌금조금하고 그 값을 지불한 것으로 착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아직 믿음이 없는 마음에 억지로 드림으로서 시험거리가 생길까 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아동복지센터에 오는 아이들에게 한 달에 만 원씩을 후원금으로 받습니다.
그것도 어려운 가정은 받지 않습니다. 맞벌이하고 형편이 좀 나은 가정의 아이들만 그렇게 받습니다.
재정이 없으니까 그것으로 조금 보충한다는 의미도 있고 너무 가치도 모르고 왔다가 갔다가 하니까 소속감을 가지게 하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야 이놈들아 너희들 이렇게 교회에서 공짜로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책도 사 주고 공부도 시켜 주고 이것저것 다 해 주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느냐 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목사님 우리가 돈 내잖아요 만 원씩이나 내는데요...

우리 성도님들이 그렇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헌금 좀 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받은 것들에 대한 대가로 값으로 생각하고 낼까 봐 걱정입니다. 

혹시 그런 마음이 드시는 분이 계시면 헌금 안 하셔도 됩니다.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없으시면 감사헌금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차피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대가를 지불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감사헌금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모든 것을 거저 주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작은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주머니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확실히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앞뒤를 생략해서 한 절만 읽었기 때문에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를 하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은혜로 주시기 위해서 예비하신 것이라는 말인데 그 핵심은 앞에 있는 2절의 말씀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받은 은혜는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받은 은혜를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감격하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긴가민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잘 살펴보고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확실한 것입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은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게 하려고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기를 충만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속에 이미 와 계신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진리를 알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확실한 것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우리가 장차 받게 될 그 영광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가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많은 것을 모든 것을 너무나 귀한 것까지도 은혜로 값없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지 못해서 원망이나 하고 불평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