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경찬3)
본문 : 계 5:9-14
제목 : 새 노래를 노래하여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곳이 어디일까요
여러분이 가 보신 곳 중에 제일 화려한 곳이 어디인지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 쪽에만 가 보아도 엄청나게 아름다운 섬과 바다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바다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깨끗하고 맑고 에메랄드 빛이라고 너무 아름다운 물이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들 중에도 화려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럽의 왕궁들 베르사이유 궁전같은 곳은 참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화려한 장식들 조각품들 미술품들 어느 것 하나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 없는 다 예술품들입니다.

저는 시골 아주 촌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도시라고는 한번도 나가 보지 않는 촌놈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서울에 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와서 밤에 서울역에서 내렸는데 그 서울역전의 밤 풍경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생전 한번도 보지 못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너무나 보기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한 때 전기를 아낀다고 네온사인을 많이 규제해서 없어졌지만 40여 년 전에도 아주 화려했습니다.

촌놈이라고 극장에서 쇼 하는 데를 누가 한번 데리고 갔었는데 그 무대의 화려함에 대한 감격을 평생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간단한 조명하고 장식들도 별 것 아니었는데 그 때 그런 것을 처음 본 감동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라는 사람은 저보다 더 촌사람입니다.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의 사람이니까 얼마나 촌스러운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촌사람이 지금 우리의 상상력을 다 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천국을 보았으니까 가히 뭐라고 이를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이야기했을 뿐이지 천국의 그 모습 그대로를 다 옮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부터 요한이 본 그 하늘나라 특별히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의 모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열린 문을 발견하고 그 문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보좌를 보았는데 그 화려함 그 거룩함 그 성스러운 모습을 무슨 말로 표현을 할 길이 없습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을 소개하는데 모양이 벽옥 같고 홍보석 같고 녹보석 같고 무지개가 있고....
하나님이 무슨 보석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밖에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그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는데 그 생물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얼굴이 사람같은 것도 있고 독수리 같은 데 날개가 여섯 개고 앞 뒤에 안과 주위에 눈이, 이 보는 눈이 두 개가 아니고 가득하게 박혀 있더라는 것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전혀 상상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상징하는 교훈이 뭔가를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상징이 뭔지 모른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장면에서 하나님 보좌의 그 화려함 그 거룩함 그 성스러움 그 위대함 상상도 표현도 할 수 없는 화려함의 극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 보좌 앞에서 생물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영광을 돌리고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24장로들도 엎드려 경배하고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놓고 찬양을 드리더라는 것입니다.

5장에 들어서면 또 다른 국면이 전개가 됩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두루마리로 된 책이 있는데 일곱 개의 도장을 찍어서 인봉을 한 책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책의 인봉을 뗄 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그 책을 받아서 인봉을 떼었고 그 책의 인봉을 떼신 예수님께 새 노래를 노래하는 장면이 5장의 내용입니다.

이 책이 무엇인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그 예수님을 노래한 새 노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인봉된 책을 여는 어린양
5장 1절에서 8절까지에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고 계시던 인봉된 책을 예수님께서 받아서 손에 드시는 장면까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인봉된 책이 들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책을 누가 받아서 그 인봉을 떼고 읽어보고 시행을 해야 되는데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자격을 갖춘 자가 나타나야 되는데 아무도 그런 자격을 갖춘 자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그만 울음이 나와서 크게 울고 있는데 장로 중에 하나가 그에게 말하기를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어린 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셨다고 했습니다. 

인봉된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그 중에 믿을 만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이 성경에서 말한 바대로 미래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심판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구원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6장 이후에는 인봉을 하나하나 뗄 때마다 이 세상에 재앙이 임하여 세상을 심판한 것입니다.

요한이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없다고 할 때 크게 운 이유는 인봉된 책에 기록된 비밀을 알 수 없어서 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미래에 있어야 할 불신자의 심판과 성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당당하게 받아서 들고 인을 떼셨다는 것입니다.
아 이제야 우리가 믿고 바라던 바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겠구나
아 이제야 우리가 이런 고난을 마치고 구원을 받아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겠구나 하는 기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막다른 골목에 빠져 보신 분이 있습니까
뒤돌아 설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희망이 없는 막다른 골목 절망에 빠져 보신 일이 있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때 손을 내밀어 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 나오도록 도움을 받아 보신 분이 있습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평생 그 일을 잊지 못하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모두의 운명이 정말로 풍전등화였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절망 가운데 멸망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앞에서 변명 한마디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건져 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실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5장 2-3절에 보면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책의 인봉을 뗄 이가 즉, 우리를 절망에서 멸망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능히 구원해 줄 이가 땅 위에나 땅 아래나 심지어 하늘 위에도 그 어디에도 아무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그 예수님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우리같은 인간을 위해 그런 일을 하시지 않아도 아무도 할말이 없는데 자진해서 기꺼이 희생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일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별 볼일 없는 우리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우리를 무조건 사랑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그 험한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우리편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는 바르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잘 할 때, 우리가 똑똑할 때, 우리가 뭔가를 이루었을 때, 성공을 했을 때 우리를 알아주고 우리편이 되어줍니다.
반대로 우리가 나쁜 일을 했을 때, 성질이 나쁠 때, 실수를 했을 때, 얄미운 짓을 했을 때, 게으르고 나태할 때, 바보스러울 때, 아무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바보같은 나를 형편없는 나를 실패한 나를 아무 가치도 없는 나를 위하여 몸을 버려 피를 흘려 구원을 해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새 노래
오늘 읽은 본문 9절에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인봉된 책을 당당히 받아 내시는 그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보고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만만 천천의 천사들이 장로들이 생물들이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그 가운데 만물들이 새 노래로 노래를 하며 경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시점으로 해서 크게 두 가지로 항상 나뉘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 이전의 시대인 B.C와 예수님 이후 시대인 A.D.로 나누어서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언약은 옛 언약(구약) 예수님 이후의 언약은 새 언약(신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이전의 사람은 옛 사람이고 예수님을 만나 이후의 사람은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이전은 죽은 생명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생명은 새 생명이라고 합니다.

새 노래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의 새 노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구원을 받지 못했을 때 새 생명을 받지 못했을 때 부르던 노래는 옛 노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부르는 노래는 새 노래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알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했고 내게 영생이 있음도 알지 못했고 천국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슬픈 노래 절망의 노래 기쁨이 없는 서글픈 노래를 불렀지만 이제는 그런 옛 노래가 아닌 새 노래를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는 참 서글픈 노래들이었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든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늙어....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헤일 수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 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찬송가도 옛날 찬송들은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런 찬송들이 많고 그런 노래들을 좋아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고난 받으셨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찬송가 하면 이렇게 슬프고 축 늘어지게 부르는 것으로 이해를 하도록 그렇게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물론 이런 찬송들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회개의 찬송도 은혜에 눈물을 흘리는 찬송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로 부르는 찬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이 부르는 새 노래는 기쁘고 즐겁고 춤을 추고 빠르고 흥겹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런 찬송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를 새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도 옛날 찬송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르고 기쁘고 씩씩한 노래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힘차고 더 기쁜 찬송으로 주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찬송, 소망이 있는 찬송, 천국의 기쁨이 있는 찬송,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날마다 더 새롭고 더 기쁘고 더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더 기쁜 구원의 감격이 있는 새 노래를 불러야 할 것입니다.


3.새 노래의 노랫말
오늘 본문에는 새 노래의 대표적인 노랫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1)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믿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심판할 자격에 합당한 자격을 가지신 예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역이 인봉을 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영원한 조건을 갖추었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그 피의 값으로 우리의 죄를 구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의 값을 치뤄야 합니다. 
그 죄의 값이 너무나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그 값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대신 지불해 주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해서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노래를 불러서 감사를 표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이북에서 찍은 뉴스들을 보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등장할 때 사람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면서 환영하는 모습을 봅니다.
보통 백성들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전에 한번 보니까 제법 계급이 높은 군인들도 아이들처럼 손을 흔들고 환영을 하면서 박수를 아주 힘차게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께 박수로 영광을 돌릴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찬송을 하면서 박수를 칠 때 그 보다도 더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린양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으니 모든 영광을 어린양에게 돌려 드립니다"는 것이 새 노래입니다. 
그래서 새 노래는 '내가 산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희생 덕분이다'는 것을 가슴 깊이 인식하고 모든 영광을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돌려 드리는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3)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10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서 하나님께 드린 바 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시고 이 땅에서 왕 노릇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바로 나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영광을 돌리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만 가지는 특권입니다.
제사장 된 자만 가지는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 보좌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경배를 드리고 새 노래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고 삽니다.
죄의 종이 아니고 사탄의 종도 아니고 돈의 종도 아니고 욕심의 종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것을 누리며 마음껏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참된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을 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왕이 누릴 수 있는 좋은 점들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들을 우리가 천국에 가면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래할 이유들은 인생의 허무나 노래하고 작은 즐거움이나 노래하는 그런 노래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노래입니다.
날 구원해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제사장이 된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또 내세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하게 된 그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옛 노래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울하고 서글픈 노래들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부를 새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넘치는 노래 
감격하여 춤을 추는 노래
이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영광을 돌리는 노래
이런 새 노래를 노래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