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경찬8)
본문 : 계 15:1-4
제목 :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1-5)

요즘 컴퓨터의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을 해서 과거에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즈음 컴퓨터에서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전체를 사진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프로그램 하나를 구해서 보고 있습니다.
지구 전체도 한 눈에 볼 수 있고 점점 클로즈업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전체도 보고, 인천 전체도 보고, 구월동 전체도 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 골목들 건물들까지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신기해서 가끔 여기저기 구경을 해 봅니다.
과거에 내가 살았던 동네들, 고향 마을, 가보고 싶은 곳들을 찾아 들어가 보면 참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이 아무개씨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연결을 할 수 있는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하늘에서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조금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살기가 바빠서 멀리를 내다보지 못하고 삽니다.
지금 이 시간 발등의 불 끄기가 바쁘니까 먼 장래의 일이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넓은 곳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느 지점까지 와 있을까 하는 것도 우리가 가끔은 살펴보아야 합니다.
좀더 멀리 좀더 넓게 바라보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아봄으로서 우리가 가는 길이 바른길인지 잘못된 길인지를 살펴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좀 더 멀리 보고 일의 결국을 알면 우리가 이 세상일에 이렇게 결사적으로 싸우는 듯이 사는 것이 얼마나 부질이 없는 일들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말씀에서 사도요한은 우리 모든 인생들의 결국을 보고 있습니다.
인생은 결국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고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갈고 슬피 울면서 고통 속에서 신음을 하면서 지옥의 형벌을 받으러 가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다른 한 종류의 사람들은 우리 주님과 함께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기쁨의 노래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고싶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천성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저 십 사사만 사천의 무리에 끼이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실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점검을 해 보자구요
무엇을 근거로 점검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점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를 구별해 주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성경 기록의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하나님을 아시는 분에 속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구원받을 수 있고 모르면 심판받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중에 하나님을 알기만 하는 사람이 있고 알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에 속합니까 알고 믿는 사람에 속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되 여러 가지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병고치심을 믿고 예수님의 기적을 일으키심을 믿고 이것저것 다 믿는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날 대신 십자가에 죽어 주셨고 그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병은 고치고 기적적인 일들은 많이 일으킬지 몰라도 구원을 받지는 못하고 천국에 가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되 구원을 믿되 그 믿음이 형식적이어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거나 감격해서 춤을 추거나 뜨거운 감사를 드리지 못하거나 그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말은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하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그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기뻐 춤을 추며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세월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하심을 따라 엄청난 재앙이 내려 퍼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가지 재앙들이 내려서 세상은 거의 초토화되었는데 거기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내린다고 하니까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편 천상에서는 성도들이 너무너무 기뻐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모세의 노래요 어린양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누구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본문 2절 말씀에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니까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짐승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도 있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도 있고 두 뿔이 있는 짐승도 있고 용처럼 말을 하는 짐승도 있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는 짐승도 있고 별별 짐승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짐승들이 하는 일도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용에게 권세를 받고 용에게 경배하는 짐승도 있고,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기도 하고, 짐승은 여러 가지 큰 기적을 행하며, 땅에 사는 자들이 다 이 짐승에게 경배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 짐승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각각의 짐승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요한계시록 강해설교를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짐승이 사탄이거나 사탄의 졸개로서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 대항을 하고 덤빈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대항을 하고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수하로 삼아서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 오면 이 사탄의 세력이 최후의 발악으로 위력을 발하여서 우리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는 일을 방해하여 끝까지 덤벼서 우리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순교를 하면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짐승에게 절하지 않고는 이 짐승이 주는 숫자를 받지 않고는 경제활동도 할 수 없고 먹고 살수도 없고 결국은 순교를 하거나 그 짐승에게 절을 하거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짐승이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호령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이 짐승에게 굴복하거나 절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한 자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서 감격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지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굴하지 않고 승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강해지자는 목표를 정하고 에베소서 6장의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렇게 험한 일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면 이미 사탄이 많은 분야를 장악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공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인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에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탄을 경배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심지어는 교회 안에도 많은 이단이 복음이니 진리니 영생이니 하는 좋은 말로 가면을 쓰고 침투해 있습니다.

세상이 아주 빠르게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이런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등장을 하여 우리를 괴롭힐지 모릅니다.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우리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관심사가 신앙을 지키는 일에 집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아에 도움이 되는 일은 적극적으로 권장을 하고 신앙에 방해가 되는 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버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에 관한 일보다는 이 세상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일 좋아하다가 신앙을 빼앗기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조심을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 일류대학에 가서 그 자만심 때문에 교만 때문에 신앙을 빼앗기고 엉뚱한 길로 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좋지 않은 대학에 아이들 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그 아이는 더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 돈 많이 벌어 온다고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 오고 뭔가 배가 부르고 살만하면 다른데 눈을 돌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돈도 못 벌고 출세를 못해도 지금처럼 신앙생활 잘하는 남편이 좋은 남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눈팔고 딴 짓을 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좀 더 멀리 보면 출세가 무엇입니까 성공이 무엇입니까 저 시온산에 주님과 함께 서는 것이 참된 성공입니다.
거기 서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를 하고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실패일 뿐이요 절망으로 가는 길일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유리 바닷가에 서서
다음은 그들이 있는 장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2절 말씀 중에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유리 바닷가에 서서..."라고 했습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들이 서 있는 장소는 유리바다라고 했고 또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승리한 성도들이 서 있는 자리를 하필 바다, 그것도 유리바다, 그것도 불이 섞인 유리바다라고 했을까요.
계시록 4:6절에서는 이 유리바다를 "수정같은 유리바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유리바다라는 뜻은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불이 섞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바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다가 무엇입니까
홍해일 것입니다.
그 홍해에서 일어난 일은 교회에 조금만 다닌 사람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 노릇하던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에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히고 뒤에는 애굽의 군사들이 마음이 변하여 칼을 들고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바다 가운데 육지의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고 뒤따라오던 애굽군대를 바다 속에 수몰시켰던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 나오는 성도들의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유리바다에서 부르는 성도들의 노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불렀던 그 노래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의 소굴에서 구원을 받고 홍해를 건너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노래했듯이 우리도 그 유리바다에서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유리바다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유리바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요 우리가 서서 노래를 부를 뜻 깊은 장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본문 2절과 3절 말씀 중에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거문고는 오늘날 기타에 가장 가까운 악기라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기타와 같은 현악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좋은 악기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참으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들이 부른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종의 노래요 어린양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 중 가장 중요한 노래는 구원에 관한 노래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우리가 그 구원을 노래할 때 우리 인간의 공로나 인간의 선함이나 인간의 자랑을 말할 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구원이 너무나 위대하여서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조금은 교만해서 우리의 자랑을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세운 공로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날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공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면 이예 인간의 자랑을 말도 꺼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 아래에서 똑똑하다고 잘났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앞에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인간을 자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나 위대한데 그 능력 앞에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에 벌어질 광경을 미리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땅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기뻐 뛰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하늘나라에서 기뻐 춤을 추며 노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미리 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유리바다에서 노래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유혹이 몰려와도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를 입고 힘써 싸워 승리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날에 우리 함께 기뻐하며 춤을 추며 노래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