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종4)
본문 : 엡 4:1
제목 : 성도의 합당한 삶 

성질이 급한 사람은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서 손해를 볼 때가 많습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내용을 자세히 들어야 하는데 성질이 급해서 중간에 몇 마디만 듣고 가 버리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스스로 뭔가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손해를 많이 봅니다.
처음 한두 마디 들으면 내용은 뻔한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해 버립니다.

세상의 사소한 일들도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까지를 잘 안 들으면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되어서 피차에 손해를 보는 일이 많습니다.
하물며 진리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질 급한 것 때문에 뭐 좀 안다는 교만 때문에 전체의 내용을 듣지 않아서 부분적으로 아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본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읽고 들을 때 조심해야 할 점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전체의 내용을 파악을 해야 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듣거나 시간이 없다고 대충대충 중간 중간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 한편을 들으실 때도 서론부터 본론 결론까지 주의 깊게 잘 들으셔야 되는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중간 중간 잠깐 잠깐 졸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아서 전체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중간 중간 몇 마디만 듣고 기억함으로 그 설교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말씀은 매우 조직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두 곳만 알면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전체의 내용들을 고루고루 듣고 성경전체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잘 알아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내용만 해도 어느 한 장의 내용만 알면 안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잘 알아야 하도록 중요한 내용들을 연결해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1장의 신령한 복만 알고 그 복이 무엇인지 그 복을 어떻게 받는지를 잘 모른다면 엉뚱한 것을 신령한 복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 복을 받으려고 엉뚱한 데로 가기도 할 것입니다.
1장의 신령한 복과 2장의 그 복을 받는 비결을 알고 그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 신령한 복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여 그 은혜에 감사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령한 복과,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경륜을 안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됩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4장 이하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아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것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알고 믿는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부뚜막의 소금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면
그 소금을 그릇에 집어넣는 것처럼 그 진리를 실천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4장에는 성도의 합당한 삶에 대해서 기본적인 여러 가지 것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 살펴보았고 오늘 다 말씀을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일치된 삶
4장 3절 말씀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13절 말씀에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한 뜻을 품고 한 목적지를 향해서 함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1)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
4절 이하에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들을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이고, 성령님이 한 분이시고, 소망도, 부르심도, 주님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6절)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는 모양이 다양합니다.
삶의 목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의미가 다르고, 삶의 방법이 다릅니다.
각각 스스로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문화를 형성하며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철저하게 하나로 동일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섬기는 하나님이 하나이시고 믿음이 하나고 삶의 원리가 하나고 가치관이 하나고 목적지가 동일합니다.
그렇게 같은 길을 가는 우리가 서로 다르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서로 힘을 합쳐서 살길을 찾고 사는 일이 많습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도 숫자를 가지고 힘을 과시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어떻게 하든지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입니다.
노동자들도 힘을 합하여 자기의 권리를 찾습니다.
농민이나 어민이나 사업가나 장애인이나 특수한 경우에 있는 사람들도 다 힘을 합하여 자기의 권리를 찾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서로 힘을 합하고 하나가 되어야 우리의 권리를 찾고 우리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서로가 힘을 합하여 함께 할 때 우리가 가는 길을 끝까지 잘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처럼 한 마음으로 협력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런 교회 내에서 서로 힘을 합하지는 못할망정 서로 싸우고 비난하고 헐뜯고 미워하고 분열한다면 그것처럼 잘못을 저지르는 큰 죄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땐 화가 납니다.
야 이놈들아 너희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고 봉사하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이렇게 희생을 하고 공부를 가르치는데 그딴 일 가지고 싸워 하고 호통을 쳐 봅니다.
호통쳐도 그 때 뿐이고 돌아서면 또 얄궂은 작은 일 가지고 서로 다투고 싸우고 그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 그러실 것입니다.
야 이놈들아 서로 도와주고 서로 손잡고 협력하면서 천국까지 잘 오라고 교회를 만들고 교회 안으로 너희들을 부르고 가르치고 있는데 오히려 교회 안에서 서로 싸워 예 이 못된 놈들아 라고 혼을 내시고 싶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하나이고 믿음도 세례도 주님도 천국도 모두가 같은 심지어 한 몸을 이루고 사는 것과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한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라고 노래하며 사는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시며 하나가 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2)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일 먼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오히려 분리가 되어야 하고 등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무조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향하는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좌익은 인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우익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하며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좌익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도 믿지 않고 천국도 믿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인간들끼리 서로 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돕고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멸망당할 죄악된 세상에 속해 있다면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이방 종교에 속해 있다고 한다면 거기서 아무리 성공적인 종교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과 함께 영원한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간판으로 보고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님도 믿지 않고 십자가의 보혈도 믿지 않고 천국도 믿지 않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장담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은 분명하고 결국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참으로 감사하게도 저와 여러분은 우익 그것도 제일 오른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왕에 신앙생활 할 바에는 확실한 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우익과 좌익의 중간지점에서 서성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당장 좌측으로 쏠려 갈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측 그것도 최고의 우측에 있기 때문에 그 곳까지 갈려면 한참 걸립니다.

하나가 되라고 하시는 것은 이 우익끼리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의지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3)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라고 했습니다.
하나가 되는 또 하나의 원칙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의 제물이 되게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화해를 시키고 하나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하나가 됨에 있어서 이런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 공부를 시키고 수련회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단체활동을 잘하는 아이는 특별히 뒤에서 잘 따르는 아이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는 아이는 단체활동에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딴전을 피웁니다.
함께 있지 못하고 함께 행동하지 못하고 제 혼자 밖으로 나갑니다.
자꾸 그러다가 보면 왕따를 당하고 외톨이가 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공식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함께 단체생활을 하는 수련회 같은 데 많이 보내서 훈련을 받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늘 자기 혼자만 지내려고 합니다.
사람들과 잘 사귀지도 않고 서로 협력을 해서 뭘 하려고 하지도 않고 남을 도와주거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행동할 줄 모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희생하면서 주님 안에서 한 형제된 기쁨을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것이 성도가 된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변화된 삶 
4장 22-24절 말씀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했습니다.

1)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에 집을 대궐같이 짓고 아주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그 속에 돼지를 넣어 두면 어떻게 될까요
며칠 안가서 돼지우리로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돼지우리 같은 집에 사람이 들어가서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미련하고 게으른 사람이라면 돼지우리같은 집에 그대로 살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이 사는 집으로 고치면서 살 것입니다.
특별히 지혜롭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며칠 내에 화려하게 꾸며서 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의 마음은 돼지우리와 같은 죄악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원래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산다면 늘 그 돼지우리와 같이 지저분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신분은 이미 돼지에서 사람으로 즉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었는데 사는 집이 옛날처럼 돼지우리와 같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죄악된 마음을 변화시켜서 깨끗하게 만들어서 성령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깨끗한 성전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할 이유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은 그대로 두면 자꾸자꾸 지저분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지 않으면 점점 더 지저분하게 되고 원래의 돼지우리로 바뀌고 마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청소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옛 사람 즉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았거나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의 단점은 옛 사람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옛 사람을 추억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아서 과거가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름다워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한 삶을 살았던지 부족하고 죄스러워 보일 때 그 사람의 삶은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도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3,5)라고 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은 죄인이었으며 모든 사는 날이 다 항상 죄 중에서 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같은 사람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라고 했습니다.

다윗이나 바울같은 사람이 이렇게 고백을 한다면 우리같은 사람이야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죄악된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일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소중한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 소극적으로 옛 사람을 벗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는 새 사람을 입는 일입니다.

옛일을 추억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일을 향하여 새롭게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13,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성경말씀 진리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목적지 천국은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일은 이 천지가 없어져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로서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새롭게 사는 이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더 새롭게, 더 바르게, 더 힘있게, 더 지혜롭게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처음 우리 나라에 들어올 때는 모든 것이 최첨단이었습니다.
교육이 최첨단이었고, 노래가 최첨단의 노래였고, 삶의 방식이, 지식적인 사고가 최첨단이었습니다.
그 최첨단의 것들이 우리의 과거의 무지를 몰아내고 미신을 몰아내고 앞장서서 사람들을 개화시키며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낙후되었습니다.
교육도 4,50년 전 그대로고, 부르는 노래의 음악도 그대로고, 삶의 모습도 그대로가 되어서 이제 오히려 세상에 뒤쳐져서 힘없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심령 즉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이 바뀌고 우리의 이해력이 바뀌고 우리의 판단이 바뀌고 우리의 깨달음이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날마다 새롭게 변하라.
성도는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작년과 올해가 달라야 합니다.
지난달과 이 달이 달라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달라야 합니다.

날마다 날마다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더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거룩한 무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신분에 맞는 삶, 성도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변화된 사람을 살라고 했습니다.
이런 성도다운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