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32~4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만 하더라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이 있습니다.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מֹשֶׁה)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출애굽의 영웅입니다. 비록 우리는 모세 자체를 위대한 인물로 추앙하는 데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와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도 본질적으로 죄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어야 하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도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아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3:10).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의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 자입니다(7:8~12:30 10가지 재앙, 14홍해, 17르비딤의 물). 그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서 본 자입니다(12:8, 34:10).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받은 자입니다(20).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자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저 백성들의 삶에서 결코 제외할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특히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제자라고 자부하면서 이를 가장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9:28). 저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모세의 위대함만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 모세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코 비교될 수 없는 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추앙하는 모세보다도 훨씬 뛰어나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비교의 대상으로 천사를 내세웠던 기자는 이제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모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비교되는 대상이 뛰어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이 더 크게 부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내세웠던 천사는 영적인 존재요, 실재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임을 자부하는 자들이라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모세와 비교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은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모세가 중요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모세가 전한 율법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모세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인 우월성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실하다(πιστός)”라는 것은 믿을만하다. 충성스럽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대해서 아주 충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들의 충성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습니다.

 

 

여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다고 하는 것은 민수기 127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론과 미리암을 향하여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בַּיִת, οκος)”거처라는 문자적인 의미와 함께 가족이라는 비유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 온 집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온 집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곧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신앙공동체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고전3:16). 따라서 하나님의 집은 한 개인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서 일하도록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며 자신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세의 충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켰는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얼마나 충성했는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마도 인류의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모세만큼 하나님께 충성한 인물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도 비록 인간의 연약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의 믿음과 그의 충성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했습니다.

 

 

본문의 자기를 세우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세우셨다(ποιέω)”라는 표현은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보다는 임명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요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사도요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성부 하나님께 대해서 신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왜 세상에 와야 했는지를 잘 아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절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기뻐하셨습니다. 비록 그것이 십자가에서 죽는 데 이를지라도 이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39절에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이 성취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도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습니다. 즉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부르시고 세우신 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신실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신실하심은 바로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의 본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과 섭리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하는 자세는 신실(πιστός)입니다. 모세와 예수님처럼 충성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사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모세보다 큰 영광이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본문 3절에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기자는 마치 그림을 놓고 설명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즉 마치 양팔 저울의 한쪽에는 모세를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려놓았습니다. 모세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불세출의 인물입니다. 그의 존재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기가 쉽지 않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모세가 특별하고 특출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는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아무리 모세가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과 같은 무게를 가지고 저울에 올려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 뛰어나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제시되는 것은 바로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진 신분의 차이입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집으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모세라고 하는 집을 지으신 건축자요, 앞에서 등장한 하나님의 온 집으로 비유되는 이스라엘을 지으신 건축자로 묘사됩니다. 이를 통해서 모세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 크고 위대하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설립자요, 건축자요, 진정한 주인이십니다(16:18). 따라서 그 집에 지나지 않는 모세보다 더욱 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천상에 있는 존재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5:12).

 

한편, 모세는 성경의 역사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람도 가지지 못한 영광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3429절 이하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습니다. 이는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 보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세의 영광은 그 자신의 것도 아니요, 영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수건으로 가리면 가려지는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우월한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분의 본질적 속성인 신성(神性)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이 영광은 영원한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무엇으로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도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신성 모독죄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창조의 사역을 감당하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따라서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모세를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거나 더 우위에 두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피조물 아래로 끌어 내리는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일에 대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자리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높여서는 더욱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최고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다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야 하는 영광과 찬송과 존귀를 가로채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악을 범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본문 4절에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건물로서의 집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그 어떤 집도 스스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떤 단체도 설립자가 있고, 한 부족에는 창시자가 존재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 생겨날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의 시작에 의해서. 또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누군가의 영향 아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물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자이십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태초(בְּרֵאשִׁית)”는 분명 하나님이 지정하신 시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을 시작하심으로 만물의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물질세계의 창조자이십니다. 여기의 천지(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는 우리가 마주하는 우주 만물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결국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인 것입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에서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고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본문은 히브리서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세라고 하는 구약에 등장하는 최고의 지도자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의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은 3절에서 논증한 내용을 더 분명하게 확증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즉 앞에서 집을 지은 자가 집보다 더 영광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연관해서 본문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존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모세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서 1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피조물에 불과한 모세보다 창조 사역에 동참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과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모세가 아무리 존귀한 사람이요,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존재와 사역에 항상 하나님의 권한 아래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세의 존재와 사역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이 세상이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는 독특한 존재 양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행하시는 독특한 사역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받으시는 독특한 영광이 있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존재하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세워야 합니다.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내 앞의 삶이 어렵고 힘이 든다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다른 길로 간다면 이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든 광성의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며, 그분 안에서 기뻐하고, 그분과 함께 승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출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