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시편 1281-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성도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공부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기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이 행복이라고 하는 단어를 좇아가기에 너무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그 행복을 붙잡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행복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삶이 필요한지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서 그 행복을 잡으려고 하다 보니 피곤하기만 하고 진정 행복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지개를 잡으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모습들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은 이렇듯 부질없는 것일까요? 인간은 진정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행복할 수 있고, 또한 행복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행복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 행복을 누리도록 복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모든 것들 속에서 행복의 요소들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복한 가정생활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가장 먼저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모든 인간의 안식처요,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따라서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그 어디서도 행복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이라고 하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 행복은 오래 가지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 안에서 가장 먼저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할 때, 교회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행복해지고, 직장이 행복해지고, 나라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이야기하는 행복한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행복한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선 가정입니다.

 

사실 인간의 행복한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2:7). 이는 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또한 인간은 이 영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심으로 인간은 그 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속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요, 그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일이 바르게 실행될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경외한다라는 것은 존경한다, 두려워한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해여 최고의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 자신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온갖 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시는 하나님께 최고의 존경을 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해서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다만 이 두려움은 무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존경하기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자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지적합니다(14:1). 어리석은 사람이 행복의 의미를 알 수 없고, 그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의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דֶּרֶךְ)”은 문자적으로 걷는 것, 안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가리켜 순례자의 길이라고 합니다. 즉 여행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여행의 길은 낯선 길입니다. 누구도 지나가 보지 아니한 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지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섬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걷지 말아야 할 길을 걸음으로 인해 생각하지 않았던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생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부활의 길입니다. 이 길을 걷는 자만이 진정 행복할 수가 있는 길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아무나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아무렇게나 걸을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이 길을 걷는 자는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자에게는 참된 행복이 주어지는 길입니다.

 

또한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바른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때 우리의 마음대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은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길의 안내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길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서 그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을 바른 안내자의 인도를 따라서 걸어갈 때 그 길이 안전한 길이요, 행복한 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그 어떤 행복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얻지 못하도록 온갖 함정을 파놓고, 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정을 주장하도록 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가장 행복한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범사가 형통한 가정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찬송가 384장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그 찬송의 가사 가운데 이러한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라고 하는 구절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형통하다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의 정의를 따르면 온갖 일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에서 모든 일에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집니까? 오히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더 불편하고, 손해를 보는 일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진정 행복을 위해 형통한 삶을 또한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형통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서도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노래하면서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형통의 개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손이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이 형통입니다.

사람들이 노동에 대한 잘못된 생각 가운데 노동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곧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라는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3:17-19). 그러나 이는 지극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기 이전에도 분명 인간에게 노동을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28절에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2:19).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에게 주신 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의 복입니다. 인간은 놀고먹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날마다 놀기만 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노동이 있고, 그 노동을 통해서 자기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고의 대가를 얻는 것이 형통입니다.

시편 1272절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불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은 땀을 흘리며 수고를 하는데 그 수고의 대가가 없거나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고는 내가 했는데 그 대가를 다른 사람이 먹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가 수고한 대가를 정당하게 얻을 때 그것이 바로 형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형통한 삶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형통의 삶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헛수고일 뿐입니다. 신명기 8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때, 우리는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서도 1절의 내용은 뒤에 이어 나오는 모든 말씀의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이러한 형통의 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될 때 형통할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형통하게 되고 풍성한 복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서, 적당히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소득으로 채워주실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여 수고를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에 보응하는 소득으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가정에 이러한 형통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수고의 땀을 흘릴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하며, 그 수고의 대가가 가정으로 돌아와서 그 열매를 먹고 누릴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가정은 형통의 복을 누리는 진정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자기의 역할에 충실한 가정입니다.

 

본문 3절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먼저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는 가정의 기둥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튼튼해야 가정이 든든하게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그 수고의 대가를 가정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가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안방(יְרֵכָה)”은 문자적으로는 구석에 자리한 방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경우 아내의 방이 가장 구석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방에서 집안의 가장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일들이 처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인의 행동이 남성과는 달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아내가 내실에 있다는 것은 아내가 아내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또한 그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내의 건강한 출산 능력을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가정은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모는 일차적으로 자녀를 출산하며, 가정의 살림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일을 하는 남편과 그 집을 관리하는 아내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임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일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미래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그렇게 양육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는 자녀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녀는 가정의 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127:3). 이는 자녀가 그 집의 대를 이어가며 혈통을 이을 존재라는 뜻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입니다(127:3).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내려주시는 상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자녀의 상급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서 큰 힘이요 자랑거리입니다(127:4). 자녀가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것은 그 부모에게 큰 영예요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큰 근심과 수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 안에서 바르게 양육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녀는 바로 가정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감람나무는 신선함과 활력, 그리고 건강하고 유쾌한 삶의 상징입니다. 이 감람나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나와서 이전처럼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감람나무에 비유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가정을 일으키는 자녀의 앞날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즉 감람나무와 같은 자녀는 그 가정을 왕성하게 일으키고 보존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의 행복은 부모와 자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즉 가족들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도 모두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믿음에 굳게 서서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자녀는 그 부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믿음 안에서 바르게 양육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전통이 아름답게 계승되어야 그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 계승되고, 이삭의 믿음이 야곱에게 계승되고, 야곱의 믿음이 요셉에게 계승이 되었을 때 저들의 가정은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을 받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세의 어머니의 믿음이 모세에게 계승되었을 때, 출애굽의 위대한 일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나의 믿음이 사무엘에게 계승되었을 때, 이가봇 시대를 밝히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족 모두가 여호와 경외라고 하는 믿음의 기초 위에 서서, 자신의 자리를 바르게 지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들이여!

 

우리의 가정은 행복합니까? 우리의 가정이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바른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가정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정말 행복한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에 임하는 하나님의 복은 단지 그 가정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복은 그 가정이 속한 신앙공동체, 곧 예루살렘에도 임하게 됩니다. 그 복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그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복의 최고점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가정들이 이렇게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리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대를 이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크게 쓰임을 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만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는 복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