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16)
본문 : 엡 6:17
제목 : 구원의 투구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하나 키우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머리가 나쁜지 노력을 하지 않는지 아무리 공부를 잘하라고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학원도 보내 보고 쪽 집게 과외도 시켜 보고 별짓 다 해 보았지만 그래도 별로였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놈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너와 가족의 연을 끊겠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성적표 받는 날이 되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어 성적표 내어 놓아 봐" 라고 조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뭐라고 말을 했게요
"아저씨 누구세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승강이가 이 문제일 것입니다.
열명 중에 일곱 여덟 가정은 이런 싸움을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20% 안에는 들어야 공부 좀 한다고 하니까 나머지 80% 가정에서는 왜 안 하냐, 왜 못 하냐, 머리가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냐 라고 실랑이를 벌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세상의 아버지들처럼 우리에게 말씀을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야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왜 실력도 없고 하는 일도 맨날 그 모양 그 모양이고 그렇다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세월만 보내고 밥만 축내고 사느냐...

앞으로 똑바로 안 하면 실적이 오르지 않으면 또 다시 실수를 하면 그 땐 국물도 없다 내 아들 아니고 천국 백성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다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참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실력이 인생의 전부고 세상이 인생의 전부냐...
너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아들이고 구원받은 백성이다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구원의 투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서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 어떤 합격선을 만들어서 제시하시고 우리가 그 조건에 그 합격선에 도달하도록 하셨다면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만날 때마다 성적표를 요구하시고 결과를 보자고 하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주눅이 들어 살겠습니까

감사하게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억만죄악에서 구원해 주시면서 아무런 조건을 제시하시지 않으시고 커트라인도 정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해 주셨고 한번 구원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죄 가운데 멸망 가운데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투구는 구원의 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투구에다 비유를 했습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머리에 쓰는 헬멧같은 것을 말합니다.
구원을 투구에 비유한 것은 구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체 어느 부분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겠지만 그래도 머리는 제일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머리부분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을 하는 것처럼 구원의 부분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생일대의 아주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1)구원의 중요성
구원이란 흔히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건짐을 받는 것이 비유를 합니다.
이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는 것도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은 훨씬 더 중요한 의미의 구원입니다.
사실 이 세상을 사는 인생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저주를 받고 그 죄의 형벌로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게 되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떨어져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구원이란 그 하나님의 저주에서 그 하나님의 형벌에서 그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축복의 대상이 되고 형벌이 아닌 칭찬과 상급의 대상이 되고 지옥이 아닌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죄인이 아니고 자신이 형벌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심각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구원의 중요성을 구원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2)구원을 받는 일의 중요성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심각한 죄인인줄 알지 못해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일에 무관심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죄를 용서 받고 의인이 되는 방법을 몰라서 혹은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구원을 받으려는 일을 실행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방법을 압니다
그 방법이 너무나 쉽다는 것도 압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이 복음의 진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길이 있고 그 방법이 너무나 쉽다는 것도 안다면 당연히 그 구원을 받는 일이 우리 삶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구원을 받는 일을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일의 중요성
구원에 관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은 믿음이 있다는 것이고 믿음이 있다는 것은 이미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계신다는 것이고 성령님을 받은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아직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에 대해서 아직도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어떤 기적을 동반하거나 믿음은 어떤 특별한 은사를 동반하거나 믿음에 따른 굉장한 일을 하거나 선한 사람이 된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없거나 부족하게 느끼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꼭 그런 기적적인 일들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냥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자체가 믿음이 있는 것이요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오히려 내 자신이 죄인으로 느껴지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그 자체가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구원의 세 가지의 시제로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어떤 때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표현을 하고 
또 어떤 때는 구원을 이루어 간다고 표현을 하고 
또 어떤 때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1)과거시제-구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8절 말씀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우리의 의로움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하게 살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우리가 공로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이 없이 이미 구원을 받아 놓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2)현재시제-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12절 말씀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확정이 되어 있지만 아직 그 구원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의인으로 인정을 받고 천국 백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구원을 받은 자로서 그 구원을 이루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성화라고 합니다.
죄에서 완전히 떠날 수는 없지만 죄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거룩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성도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날 완전히 딴 사람처럼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과거와 다른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시나브로 변화해가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선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감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미래시제-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2절에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얻었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루어 나가는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나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구원이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 구원이 완성이 되는 날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고 또 얼마나 좋을 것인지 잘 모르지만 그 날이 오면 구원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것입니다.


3.구원의 투구를 쓰고 사는 것의 의미
앞서 구원의 시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해 주셨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이미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셨고 이미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 받은 구원에 대해서 다시 구원해 달라고 조르거나 다시 빼앗길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미래에 완성될 구원에 대해서도 우리가 염려할 피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하며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의 투구를 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 구원을 이루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며 산다는 의미입니다.

1)육신의 삶에 있어서 구원을 이루며 사는 것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 즉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이 강건해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육신적인 삶이 강건해야 합니다.
육신이 너무나 고달프고 슬프면 신앙생활도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납니다.
막다른 골목에 서서 도저히 나 스스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그런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돈 문제, 사람과의 사이의 문제, 사랑문제, 정신적인 고통의 문제, 육체적인 질병의 문제...

이런 문제들을 믿음의 힘으로 이겨 나가는 것도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경우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적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 신앙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다가 어려운 일만 만나면 금식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평소에 잘 알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당연히 기도하고 매달려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 당연한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 앞서서 평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들을 바르게 알고 지킴으로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면 비교적 어려움을 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려움을 당해도 주위에서 구원해 줄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난한 것을 탓하고 도와줄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것을 탓하고 주변에 친구가 없는 것을 탓하고 심지어 그런 환경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을 친척을 친구들을 많이 원망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돈을 벌어보겠다고 몸부림을 치거나 절약하면서 모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나에게 잘 못해준 것은 잘도 생각을 하면서 왜 내가 남에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가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왜 내게 진실한 친구가 없는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즉 구원을 이루면서 사는 삶이란 급해질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노력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게으르게 살면서 기도해서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지런하게 땀을 흘리면서 일한만큼 땀 흘린 만큼 그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법칙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이 하나님의 법칙이요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이기주의적인 자세로 항상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신앙생활과 관계가 없는 삶입니다.
늘 이타적인 자세로 자신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이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며 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영적인 삶에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
영적인 삶에 있어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게 교제를 하고 삶에 있어서 성화가 이루어지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더 기쁘게 예배에 참여하고 더 진지하게 설교를 듣고 더 감격스럽게 찬양을 하고 더욱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더 뜨겁게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타성에 젖어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더 노력을 하고 더 열심을 내어서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구원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는 것은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 세상에서 영육간에 구원을 이루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이모양이지만 그 날에 이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될 것인데 그 날을 기대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보람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으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시면서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