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5.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22)
본문 : 엡 6:18
제목 : 자녀를 위한 기도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오늘부터 우리의 숨겨진 마지막 무기인 기도에 대해서 공부를 합니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만큼 중요한 무기도 없을 것입니다.
또 기도만큼 그 사용법을 바르게 알고 사용해야 하는 무기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가지시고 강한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기도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배우기 전에 오늘이 어린이 주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자녀를 위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세 가지 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마음씨 착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음날 아침까지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 모두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기뻤지만 막상 그와 같은 기회를 얻자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이 소원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크고 좋은 소원이 있을 것 같고, 저 소원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크고 좋은 소원이 있을 것 같아 선뜻 소원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고민하며 생각하다보니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할머니가 무의식 중에 “커다란 소시지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그것이 그만 소원이 되어 하늘에서 커다란 소시지 하나가 뚝 떨어졌습니다. 
소중한 소원 하나가 그만 소시지 하나를 얻는 데 사용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할아버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소시지, 할망구 코에나 가서 탁 붙어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간 그것이 또 소원이 되어 정말 할머니의 코에 그 커다란 소시지가 찰싹 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원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소시지는 할머니 코에서 무슨 수를 써도 떨어지지 않게 되자, 할 수 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소원으로 “그 소시지, 코에서 떨어져라”를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소중한 세 가지 소원을 빌 기회를 가지고도 커다란 소시지 하나 밖에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웃고 넘기기만 할 수 없는 교훈이 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이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붙들고 기도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있으나마나 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느라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이런 소시지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정말로 자녀가 필요한 것보다는 그냥 부모님의 기준에서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기도할 때가 참 많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서 어떻게 하든지 머리가 되게 해 주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이번에 보는 시험은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고 잘 나가게 해 주세요...

그래도 뭔가를 좀 아는 사람은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우리 아이가 지혜롭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녀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생각없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자녀에게 최고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 꼭 있어야 될 것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귀한 기도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무조건 하나님께 소원만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이론은 아무 소용이 없듯이 기도도 내 삶이 따르지 않는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종으로 부려먹겠다는 생각일 뿐입니다.
내가 정말로 그 일을 하려고 애를 쓰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특별히 우리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자녀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말로만 하는 기도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자녀들 보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먼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의 행복 보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내 체면을 위해서 하는 기도는 사랑의 기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그 아이가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가끔 이용하는 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 원장이 교회의 집사님이라서 친절하게 잘 주십니다.
그 의사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 의사가 되면 의사 자신은 불행하고 의사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만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의사 자신은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 하고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된 후에도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하고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 때문에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돈도 비교적 잘 벌어다 주고 아프면 해결도 해 주고 가족들의 혜택은 참 많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고생하고 부인은 좋은 차 타고 기분 좋게 놀러 다닌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의사시키려고 할 때 왜 의사를 시키려고 할까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 희생정신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부모님의 욕심 때문에 의사를 시키려고 한다면 그 기도는 사랑의 기도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모든 일들을 자녀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사랑의 강도에 있어서 그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부족한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그저 자식 배 안 고프게 하고 좀 넉넉하면 학교나 보내 주면 그것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녀의 인권이나 자녀의 진정한 행복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요즘은 그 정도는 국가에서 해도 다 합니다.
아이가 어떤 경우에 고아가 되거나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면 국가에서 데려다가 그것도 요즘은 그룹홈이라고 하는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공부시켜주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가정이 그저 먹고 잘 것만 해결해 주고 학교 보내 주는 것만 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라면 단순히 먹고사는 것 이외에 국가가 이웃이 해 줄 수 없는 참된 사랑을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아버지는 자녀와 놀아준다고 하면서 아이는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기분 내려고 아이를 면박을 주고 노리개 감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은 아버지는 아이를 배려하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놀아준다는 것입니다.

숨바꼭질을 할 때 아버지가 술래가 되면 아이가 숨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 숨었지 하고 일부러 안 찾는 아버지
자신이 숨을 때는 손을 밖으로 내어 놓든지 옷자락을 보이게 하든지 헛기침을 해서 빨리 찾도록 해 주는 아버지
이런 자상함이 아이의 가슴에 평생을 남아서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평생 믿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상함이 있는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서 기도할 때 진정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저 부모니까 형식적으로 이것저것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가 자녀를 위한 참된 기도가 될 것입니다.


2.자녀의 잘못을 용서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는 모든 일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모든 일에 완전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어리석은 부모입니다.

프로스트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한 사람의 청년으로 만드는데 20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어떤 다른 여성은 그 아들을 단 30분 동안에 바보로 만든다."
현명한 어머니는 자식을 훌륭한 청년으로 키우기 위해서 20년의 세월을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기다리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30분 동안의 질책으로 아이를 평생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옛날 부모들은 왜 자기 아이에게 그렇게 심한 욕을 하면서 나무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들 아이를 저주하는 욕들을 참 많이 했습니다.
진짜로 아들이 그렇게 망하고 바보가 되기를 원했는지 욕을 많이 했습니다.

"나무람 속에서 자란 아이는 비난을 배우고 
적개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싸우는 것을 배우고 
비웃음 속에서 자란 아이는 부끄러움을 배우고 
수치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죄의식을 배운다."(도로시 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아이들이 문제청소년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비난하고 싸움질하고 깡패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열등감과 죄책감에 젖어서 세상을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나무라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큰 실수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아이의 편에서 그 아이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보무님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이해하고 나를 용서하고 나의 편이 되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해야 합니다.

제가 그나마 이 정도라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우리 할머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할머니는 제게는 참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한번도 저를 나무라신 적이 없습니다.
뭐든지 이해하고 용서하고 무조건 사랑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요즘은 철이 많이 들어서 젊었을 때하고 많이 변했습니다.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 많이 너그러워졌습니다.
몇 일 전에 어떤 아이가 밥을 먹다가 식판을 땅에 떨어뜨려서 밥이랑 반찬이랑 바닥에다가 다 엎어 버렸습니다.
옛날 같으면 야 이리와 넌 눈이 없느냐 손이 없느냐 여기 손들고 서 라고 혼을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렇게 미워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너 목사님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 아니지 그러니까 아이가 당당하게 아녀요 어쩌다가 실수로 그런 거에요 그래 그럼 됐다...
아이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참 잘했다 내가 이제야 인간이 좀 되어가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할머니께 감사하십시오
우리 할머니가 저를 바라보던 눈으로 제가 여러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하는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그 사랑과 용서와 동정의 눈빛을 조금이나마 닮아 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저의 무의식 속에 깊이 묻혀 있었던 그 사랑이 눈을 뜨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래야겠지만 여러분의 자녀에게 만이라도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눈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그런 삶을 살면서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녀를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3.진정한 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무조건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출세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고 연구해 보고 그런 다음에 그 중요한 것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많겠지만 그 중요한 것 중에 주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요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교회에 오는 것만으로 만족을 하시면 안됩니다
교회에 출입을 하면서도 신앙은 가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신앙의 가정에서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교회에 다니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니다가 부정적인 면만 보고 오히려 더 바르게 살지 못하는 아이들이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보무님들이 억지로 교회 끌고 오니까 끌려 다니다가 틈만 주어지면 사슬을 끊고 도망을 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제사를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가서 언약궤 옆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도 제일 싫어하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앉아는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거나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오기 싫어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댑니다.
교회에는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세상처럼 막 잘 나가는 그런 아이는 없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많은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친구로 만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교회는 재미로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왕이 되어서 왕 노릇 하는 그런 재미를 마다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진리를 안다면 교회가 재미가 있고 없고를 논할 수 없습니다.
재미가 아닌 그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내 뜻을 펼치기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해야 합니다.
내 체면 내 자존심 내 의를 나타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르게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땀을 피 같이 흘리시며 기도하실 때 오직 내 뜻대로 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임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친구가 없다 재미가 없다 내 마음대로 못한다 이런 이유로 교회를 멀리하는 것은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고 주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섬기게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말씀만 드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면서 그 소원을 아뢰는 것이 참된 기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잘못을 용납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해를 하고 용서를 해 주고 품에 안아 주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정말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일 알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진실된 기도가 아이의 앞날과 영원한 생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