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30)
본문 : 엡 6:19
제목 : 목회자를 위한 기도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성도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의 정도는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에 비례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할수록 기도하게 되기 때문이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성도들에게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을 할 때 바울 같이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이라면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스스로 기도하면 될 것 같은 데 자신 스스로의 기도도 부족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목회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목회를 하느냐에 따라서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가 결정이 되고 나아가서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신도 때 생각하기를 성도는 담임목사 한 사람 잘 만나는 것이 참으로 큰 복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 목사들이 훌륭하지만 개중에는 목사로서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중에 한 사람은 교회에 오래 다니지를 못합니다.
이 교회에 갔다가 저 교회에 갔다가 또 다른 교회로 옮겨 다닙니다.
목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상업적이고, 어떤 목사는 설교를 잘 못하고, 어떤 목사는 삶이 진실해 보이지 않고, 어떤 목사는 사치를 하고....

목사라고 해도 이런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사를 위해서 특별히 담임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도들이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기도의 제목이 들어 있습니다.
목사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기도를 해야 되겠지만 특별히 중점적으로 기도해야 된 제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저를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내게 말씀을 주사"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하는 연설 정도로 생각들을 합니다.
목사가 오늘은 어떤 연설을 하는가 재미있게 잘 하는가 못하는가라고 생각하면서 듣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성경공부를 재미있게 그래서 이해하기 쉽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주일 낮 예배 시간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할 것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유일한 말씀인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목사들은 성경본문을 읽고 설교를 하지만 그 말씀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성경본문을 해석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것이 듣기에는 좋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할런지는 몰라도 그것은 사람의 말일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사람의 말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 지식이 한계가 있고 그 깨달음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이 잘 절리되어 있는 것 같아도 그런 인간의 이론들은 금새 바뀌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을지라도 성경본문에 충실한 설교가 참된 설교입니다. 

또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목사가 그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본문을 인용한다고 해도 때로는 그 인용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아주 다양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공의를 행하여야 한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이라고 하는 곳도 있지만 가난한 것이 복이라고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편히 쉬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여러 시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적용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 말씀을 적용함에 있어서 목사 개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교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가 성경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르게 해석을 하여 적용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인간의 말을 가지고 인간의 뜻을 따라 전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복음의 비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비밀은 일반 상식으로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의외로 이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불교와 유교와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의 기준을 부모님을 잘 섬기고 형제간에 잘 지내는 것을 의의 기준으로 여깁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부모님에게 잘하지 못하고 형제간에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떤 친척과 장시간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늘 이야기를 시작하면 먼저 말하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잘 설명을 합니다.
잘 듣고 거기에 이의가 없이 동의를 합니다.
그래 놓고도 하는 말이 왜 교회에 다니면서 집안일에 안 오느냐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 못하고 집안일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교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에게 잘하고 형제에게 잘하고 집안일 잘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 잘한다고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행을 하고 절제를 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의인이 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산에 들어가서 세속과 이별을 해야 의로운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그렇게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이 많이 생겨서 깊은 산속 수도원에서 세상과 등지고 고행을 하면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을 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죄 많은 세상 보는 것이 죄이고 사는 것이 죄이고 사람을 만나면 죄를 지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인지라 이 세상을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욕심도 버리고 미움도 버리고 사는 것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신비한 이적을 일으키고 황홀경에 빠져 보고 뭔가 초자연의 세계를 맛보아야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의의 기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우리 나라가 오랜 역사동안에 유교나 불교나 무속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에는 이런 일반상식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쉬운 것이지만 알려 주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마술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지요
그러나 그 비밀을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복음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아 간단하고 쉽다라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죽어도 모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쓴 서신서들은 대부분 그 복음의 비밀을 알리려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배운 에베소서 3:3-6까지 그 복음의 비밀에 대해서 직접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3:3-4)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알게 된 복음의 비밀을 에베소서에 대강 기록했는데 그것을 읽기만 해도 그리스도의 비밀 복음의 비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고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의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복음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는 것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요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무능한 자임을 깨닫고 날 대신 죽어주신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의지할 때 비로소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일한 의의 기준이라는 것이 복음의 비밀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목사가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것입니다.
이 중요한 일을 놔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직무유기고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이 복음의 비밀을 알려 주는 일이 목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목사들은 그 비밀을 말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들만 많이 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이 비밀을 모르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원숭이가 눈이 나빠져서 안 보인다고 호소를 하자 지나가는 사람이 안경을 사서 끼어 보라고 했습니다.
원숭이가 시장에 가서 안경을 다섯 개를 사서 하나는 오른 손에 끼고 하나는 왼 손에 끼고 또 하나는 왼 발에 그리고 오른발에 마지막 하나는 이마에다가 걸쳤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사람들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안경을 다섯 개 끼었는데도 잘 안 보이는 것은 똑 같네 라고 했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이 원숭이와 비슷하게 삽니다.
십자가가 좋은 줄은 알아 가지고 십자가 목걸이 십자가 반지 십자가 넥타이 핀 십자가 성화 십자가 모양으로 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이 나타나면 딱 내밀어서 귀신 퇴치하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저희 어렸을 때만핻 귀신이 참 많이 득실거렸습니다.
요즘 그 귀신 다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저희 아버님은 평신도셨지만 교회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가서 저희 집 마당에다가 교회를 짓고 개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고 교회가 들어온 일도 없는 동네에 역사이래 최초로 교회가 들어왔으니 귀신들이 얼마나 날뛰었겠습니까
그래서 귀신이 못 들어오게 여기 저기 빨간 십자가를 만들어 세웠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알고 보니 예수님의 십자가가 귀신 쫓아내는데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 귀신이 못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십자가를 들고 귀신아 물러가라 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걸어두면 재수가 좋아서 장사가 잘 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그런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을 하는 것은 신자가의 비밀을 잘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날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요 그것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담대히 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되 이 복음의 비밀을 말하되 담대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당시로 보아서 이 말씀은 유대교나 로마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비밀을 말하다가 모진 고난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곤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이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모진 고문과 고통 속에 죽어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5-38절에는 복음의 비밀을 알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고통을 감수했던 성도들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다고 희롱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켜져서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서 죽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이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 위해서 당한 고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마음껏 이 복음의 비밀을 외칠 수 있는데도 이 복음의 비밀을 외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이 자유로운 세상에 살면서도 복음의 비밀을 전하려면 담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는 교회는 부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부흥을 지상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이 복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모아서 헌금을 많이 하게 해서 교회당 건물을 크게 짓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입니다.
그런 일을 잘하는 목사는 훌륭한 목사로 대접을 받고 잘 살기 때문에 많은 목사들이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담대하지 않으면 이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외칠 수가 없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지 못한 사람은 이런 불이익을 감당하면서까지 복음을 외치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설교의 주가 되어야 하고 믿음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많은 목사가 다 복음을 외면하고 다른 길로 간다고 해도 우리교회는 우리 목사는 이 십자가의 복음을 외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길이 험하고 이 길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길이기에 담대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담대하게 이 복음의 비밀을 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는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성도님들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를 만나서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그런 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외치는 바른 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