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6.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26)
본문 : 엡 6:18
제목 : 성령 안에서 기도 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웃는 것처럼 좋은 보약이 없다는 것은 다 아시지요?
웃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어디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요
맨날 화날 일 걱정스러운 일 짜증나는 일만 있으니 한번 배꼽을 잡고 웃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저라도 여러분을 한번씩 웃기고 싶은데 재주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일부로라도 한번 웃어 보려고 코미디 프로를 빠지지 않고 봅니다.
요즘 모 방송국에서 웃음을 찾는 사람들 "웃찾사"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그 웃찾사 프로에 "나 몰라 패밀리"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춤도 웃기게 잘 추고 노래도 가끔 제법 하면서 약간 혀 꾸부러진 말투로 웃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미국 본토에서 랩을 공부하고 왔다고 폼을 잡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에게 아주 쉬운 영어로 한마디만 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홧! 홧! 하다가 쉽게 한국말로 해 주면 "오예"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웃기는 사람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제법 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물어보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큰소리를 치며 살지만 막상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작은 부분적인 지식 그것도 편견이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법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막상 중요한 것들을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있다가 이단이 와서 몇 마디 하면 아이고 그런 줄 몰랐다면서 홀딱 넘어가 버리는 것이 현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저 역시도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늘 아는 것이 부분적이고 부족할 때가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9-1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요 (동판)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한 것임을 늘 기억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고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마음으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요즘 A.W.토저 목사님의 책을 대여섯 권을 사서 읽고 있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1963년에 소천하신 목사님이신데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교회의 부패한 현실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타협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선포한 목사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책 중에서 "세상과 충돌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상과 동행할 것인가, 성령님과 동행할 것인가"가 부제로 되어 있는데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한 여러 가지의 말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면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성령 충만하여 뜨거운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를 우리 각자가 선택을 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오늘날 올바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습니다.
좀 뜨겁다고 생각이 되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이단의 사상을 가지고 있고 
정통적인 신앙사상을 가진 사람은 냉랭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원인은 성령님에 대한 여러 가지의 오해들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 때문에 어떤 사람은 미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성령 충만에 관한 토저 목사님의 설교 한편을 재 구성하여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한 시간 더 성령 충만에 관한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지라
사람들이 생각을 할 때 성령 충만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기도를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해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성령 충만을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등지고 교회나 기도원에서 기도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성령 충만을 오해하는 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받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만일 성령님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은 교회에 올 수도 없고 예수님을 받을 수도 없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8:9절 말씀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서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성령님의 역사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고 믿음을 가지게 되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받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나 우리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는 그저 받아 누릴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도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 우리가 공을 세우거나 노력을 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고 충만하도록 명령을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도달하기 어려운 어떤 시험을 마련하시고 그 시험에 합당한 공로를 세운 사람만 성령 충만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든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성령 충만을 갈망하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성령 충만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해야 할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말은 성령 충만을 원하지만 실제로 간절히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께 감시를 당하고 잘못에 대한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성령충만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적당히 교회에 의무적으로 다니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깊이 있는 신앙생활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를 감시하고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를 보호하고 변호하고 도와주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를 갈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정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갈망하느냐에 다라서 거룩한 삶이 결정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령 충만을 갈망하느냐에 따라서 성령 충만한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진정으로 갈망하기만 하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어린양의 보혈로 죄의 장벽이 허물어졌고 보혜사 성령님께서 이미 오셨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령충만해지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 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성령님에게 순종하라
성령님은 예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성령님도 예수님처럼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고 친절한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 큰소리를 치시고 우리를 강제로 제압을 할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으시지만 그렇게 강압적으로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우리를 길들이실 수 있으십니다.
말 안 들으면 그 때 그 때 벼락을 내리거나 벌을 내리시면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겠습니까 
꼼짝없이 그 말씀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령님께서는 그렇게 강압적으로 행사하시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닫고 순종하기를 바라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아주 강하게 합니다.
당신 똑바로 안 하면 벌받아 하나님을 어떻게 보는 거야 죽기 싫으면 똑바로 해 하고 무섭게 설교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말을 잘 안 들으니까 그렇게 큰소리를 쳐야 조금 말을 들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공갈 협박을 해서라도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속에 와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후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 불호령 같은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자비로 친절하게 대하시며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벌을 받을까 봐 무서워서 형식적으로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스스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친절하시고 너무나 좋으신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꺼이 순종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스스로 순종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벌을 주고 당장 눈앞에 불이익이 발생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순종을 하겠지만 아무 일도 없는데 어찌 쉽게 순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순종을 하면 돈이 더 많이 벌어지고 더 재미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오히려 세상을 살기가 힘이 들어지는데 손해가 나는데 어찌 스스로 순종을 하기가 쉽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즉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세상과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삶입니다.
핍박을 받고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본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늘 생각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4.당신의 것을 내어 놓아라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성령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나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모든 것을 성령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여 오히려 나쁜 길로 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는 독침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내어 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유에서 독침을 제거하시고 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물을 하나님께 내어 놓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사용을 하면 독이 됩니다.
하나님께 내어 놓을 때 그 독침이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산을 다 교회에 헌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상의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가정을 꾸미고 자녀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런 삶을 모르시거나 반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재물에 독소를 없애시고 바르게 사용되어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능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그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하나님과 상의를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진 재능에서 독소를 제거하시고 그 재능이 여러분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쓰여지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저도 여러 방면에 재능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공부면 공부 어느 것 하나 남에게 지지 않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재능들이 나 스스로 사용이 될 때 나를 나쁜 길로 몰아갔지만 그 재능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았을 때 그 재능들이 목회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집을 하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고집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참 좋은 것입니다.
신념이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고집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집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독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오히려 여러분의 삶에 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참 고집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하고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집 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 고집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았을 때 이렇게 선하게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고집이 없었다면 벌써 교회 문닫고 제 갈 길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좀 고집을 부리면 아 저 고집 때문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성장해 나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물이나 재능이나 신념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가진 모든 잘못된 것들 무거운 짐들까지도 성령 하나님께 다 내어 놓으시면 하나님께서 다 유용한 것이 되도록 고쳐 주시고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5.옥토를 일구는 쟁기질을 하라
씨앗이 밭에 떨어져서 자라지 못하는 것은 옥토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마음에도 여러 가지 잡초가 있으면 복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원하는 사람은 날마다 우리 마음에 잡초를 제거하는 쟁기질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잇기 전에 자기 마음을 비우는 단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내 생각 내가 아는 지식 내가 경험한 것들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한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자기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생각 자기의 지식 자기의 욕만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날마다 죽이고 비우는 사람을 산다고 했습니다.

바울같은 사람이 그랬다면 우리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은 바울이 가졌던 지식에 비하면 그 자부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비우시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며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갈망하시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하시지 마시고 정말로 원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고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옥토를 일구기 위한 쟁기질을 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나를 죽여 마음을 비우시고 거기 빈 마음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