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31)
본문 : 엡 6:20
제목 : 복음의 비밀을 알리기 위하여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말을 담대히 하게하려 하심이니라"

본문 앞 절의 19절 말씀에는 바울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제목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에게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이고 육체적으로 여러 가지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육신적인 고통의 해소를 위해서는 조금도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된 오늘날에도 우리가 기도하고 집중적으로 해야 할 이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더 정확하게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비밀이라 함은 복음의 참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들어 있고
그 의의 기준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의인이라는 신분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스스로의 고행이나 선행이나 의로운 삶이 없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비밀이 복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잘 살아야 8,90년 살다가 죽고 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것이 인생인줄 알았는데 그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제한이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복음의 비밀을 알면 그 길을 볼 수 있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복음을 말하지 않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런 복음의 진리가 아닌 다른 것들을 복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가 되는 것을 복음으로 전하는 이단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아는 우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이 복음의 비밀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이 일을 위하여
본문 말씀에 "이 일을 위하여" 바울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이 일"은 앞서 말씀을 드린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목사들이 모든 성도들이 교회가 힘을 합하여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목사가 참된 목사인가 거짓 목사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이 일"입니다.
성도가 성도다운 성도인가를 판단하는 기준도 역시 "이 일"입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허울뿐인 교회인가를 판단하는 기준도 "이 일"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붙잡고 "이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모세가, 왜 다윗이, 왜 많은 성경 속의 인물들이 그들이 가진 죄악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인물로 묘사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고 "이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우리가 이렇게 존경하고 박수를 보냅니까?
그들 대부분은 "이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며 충성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도라고 합니까?
그가 "이 일"을 위해서 특별한 부름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그렇게 성경을 잘 알고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라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악평을 받았습니까 "이 일"을 모르고 "이 일"을 방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왜 가롯유다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신자가 되어 비참한 죽음을 자초했습니까?
"이 일"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오랜 역사동안 이렇게 많은 말씀들을 성경책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이 성경말씀의 기록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 일"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사랑나누기를 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하는 이 모든 일들도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목회자들을 위한 수많은 세미나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 많은 세미나들이 "이 일"을 최우선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세미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기도회들이 있지만 "이 일"을 위해서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하는 기도회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모임이 있고 수많은 단체들이 있고 수많은 사업들이 있지만 "이 일"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나 사업이나 모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설교들이 교회에서 집회에서 사업체에서 가정에서 방송매체를 타고 말하여지고 있지만 "이 일"을 말하는 설교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일과 반대되는 말들을 설교라고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다분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 일"이 아닌 다른 일들을 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이 일"을 최고로 알고 이 일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쇠사슬에 매인 사신
바울은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를 기록할 때 로마의 감옥에 투옥이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28장 20절에 보면 그가 로마로 호송되어 갈 때 벌써 그의 손목에 쇠사슬이 채워지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붙잡히고 쇠사슬에 묶여서 로마의 감옥으로 간 것은 스스로 자청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이별을 고할 때 장로들은 한사코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잡힐 것을 뻔히 알고 일부러 감옥 행을 자초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그 길을 택하였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알리는 것은 너무나 긴박하고 너무나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에 손에 쇠사슬을 채우고 감옥에서 고생을 하는 일이 있어도 그런 고통을 뻔히 알면서도 목숨이 보장이 되지도 않는 줄을 알면서도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고난을 자청해서 택했습니다.

오늘날도 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데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나라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유도 있고 복음을 따라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비웃고 반대하고 퍼질까 봐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년간 5만 명이 넘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아닌 엉뚱한 것을 주장함으로 복음의 의미를 흐리게 하고 복음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건전한 교단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에서까지도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며 다른 복음을 전함으로 이 복음의 비밀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쇠사슬에 묶이기는커녕 자신의 안일과 육체적인 행복을 위해서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것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더 호화롭게 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 복음의 비밀을 알리는 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바울의 이런 모습을 닮아 가려는 목회자들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큰 교회를 하여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호화로운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본연의 위치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쇠사슬에 묶여 있지만 스스로를 초라하다거나 실패자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스스로를 "사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신(使臣)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를 대표하여서 다른 나라로 파송을 받은 그 국가의 공식 대표자요 대변자 즉 '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에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보냄 받은 대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만 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였습니다. 

목회자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외형적인 모습으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권대사가 될 때 즉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말할 때입니다.
스스로 사자라고 말하면서 이 복음을 비밀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은 대사가 아니라 대사를 빌미로 권력을 누리는 자입니다.

그가 잘났던지 못났던지 박사 학위가 있든지 없든지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인기 인이든지 모으지 못하는 비인기인이든지 그가 많은 일을 하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든지 아무 일들도 하지 못해서 비난을 받든지 노회장 총회장 감투를 썼든지 그런 감투와는 전혀 관련이 없든지 그런 외형적인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이 될 때 그가 사슬에 묶여 있는 신세이든지 감옥에 갇혀 있든지 상관이 없이 당당하고 멋있는 존경받아야 할 사신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할 때 힘차게 아멘을 외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줄 아는 멋진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당연히 할말을 담대히 하라
바울은 자신이 "이 일"을 위하여 스스로 자청하여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이유를 "이 일에 당연히 할말을 담대히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말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할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말을 먼저 강하게 꼭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비밀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안다면 복음을 비밀로 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비밀을 당연히 해야 할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알려져야 할 비밀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는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복음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고 나서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알려져야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는 비밀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0-11)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허락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비밀을 듣지만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듣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복음의 진리를 말하여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은 이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알아듣든지 알아듣지 못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당연히 할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이 복음을 전하면서 위축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하는데도 부흥을 하고 선한 일들을 많이 하는데 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부흥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제가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세상이 뒤집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목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세상이 인정을 하든지 안 하든지 사람들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요 하나님께서 선포하라고 명령하신 비밀이기 때문에 담대하게 당당하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라고 한 이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비밀이라는 것과
그 비밀을 알아듣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과
이 복음의 비밀을 마땅히 담대하게 전하여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