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4. 2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20)
본문 : 엡 6:17
제목 : 인내의 말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계3:10) 

그리스 속담에 "한 시간의 인내는 십 년 안락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의 나무에 금이 열린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이런 인내에 대한 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삶에 있어서 인내는 참 중요한 것입니다.
Calvin Coolidge라고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세상에서 재능이 있으면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 많다.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 많다. 
특별한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왜 그런가? 이유는 단 하나,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하고 말을 했습니다. 

재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내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교육보다도 더 중요한 교육은 인내에 대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한 용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 인내심, 참을성, 오래 참는 것은 참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랑의 특성도 오래 참는 것이 제일이라고 했고, 성령의 열매도 오래 참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 참고 견디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상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인내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함께 인용할 말씀 요한계시록 3:10절 말씀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특별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하시면서 성도들에게 특별히 하신 말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에 이렇게 강조를 하셨다고 봅니다.


1.인내의 말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 중 유일한 공격무기인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영생의 말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인내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인내의 말씀"이란 요한복음 16:33절에 있는 말씀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석을 합니다. 
요한복음 16:33절에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참 힘이 드는 세상입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인생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이요 사탄이 그 배후에서 그 탐욕스러운 삶을 부추기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그래도 뭔가가 다릅니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좀 더 양심적이고 좀 더 선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고 좀 더 법을 지키며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이 세상이 이만큼 더 악해지지 않고, 더러는 선한 일들도 있고, 아름다운 일들도 있는 것은 기독교의 정신이 세상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세상이 따듯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한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까막눈으로 세상을 살던 사람이 태반이었는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사학을 많이 세워서 이렇게 교육열이 높은 지식을 무기로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노인복지를 연구하면서 살펴보니까 우리 나라의 과거 교육상태를 알 수 있는 통계를 하나 보았습니다. 
지금현재 75세 이상의 50%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70세 이상은 40%가 글을 모르는 사람이고 65세는 30%, 60세는 20% 이렇게 점점 문맹률이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 되었고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복지의 기본이 되는 의료시설과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시설 대부분이 기독교의 정신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하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인 지역아동쎈터의 90%이상이 교회가 목사님들이 설립을 하고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밥을 해 주는 것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단체 대부분이 기독교의 시설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세상이 우리에게 상을 줍니까 아니 따뜻한 칭찬 한마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를 할 줄 압니까
오히려 비웃고 흉보고 욕하고 방해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하려고 하는 것이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인심입니다.

이럴 것이 세상인줄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은 사람으로 알지만 나의 이 희생은 나의 이 고난은 나의 이 인내는 세상을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참고 인내할 때 오히려 세상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뭐라고 비웃든지 우리의 길을 담대하게 갈 때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의 영생의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5:11절에 보면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인내 하면 욥의 경우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욥은 자식을 한꺼번에 다 잃고 재산도 다 잃고 사랑하는 아내도 저주하고 떠나고 친구들의 조롱도 받고 온 몸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서 기와조각을 가지고 몸을 긁고 앉았으면서도 그는 입술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인내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셨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빌라델비아 교회의 인내
오늘 함께 인용한 요한계시록 3장10절의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예를 들어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하면 아 참 좋은 교회다 하나님께 칭찬만 들은 교회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책망만 듣거나 책망과 칭찬을 같이 들었는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들었습니다. 

그 칭찬의 내용을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라고 했습니다.

1)적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켰으며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공통적인 소원은 좀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좀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좋은 집에서 살면서 좋은 차를 타고 크고 좋은 교회당에서 그래도 수표로 헌금도 하면서 고상하게 신앙생활을 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다 하실 것입니다.

셋방살이를 하면서 집을 겨우 샀어도 융자 많이 얻어서 그 융자금 갚아나가기에 힘이 들고 늘 생활비 부족해서 허덕이고 아이들은 커 가고 여기저기 돈 들어갈 데는 많고 몸은 여기저기 아파 오고 걱정거리는 왜 이렇게 많은지 참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깐에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별로 선한 일도 많이 못하고 실적도 올리지 못하고 겨우 그저 나 한 사람 신앙 유지하는데 급급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칭찬해 주지도 않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은 우리 사람들과 다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시는 기준은 다르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크고 많고 좋은 것만을 봅니다.
누가 더 헌금을 많이 했느냐
누가 더 봉사를 많이 했느냐
누가 더 교회에 많이 출석을 했느냐...
이런 외형적인 것의 결과만 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부자는 전 재산을 팔아서 헌금을 해야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지만 없는 사람은 동전 하나를 헌금해도 그것을 높이 평가를 하십니다.

성격이 착하고 선한 사람은 좋은 일을 엄청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지만 성질 못된 사람은 설질 안 부리고 조용하게만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착하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주일 지키기 쉬운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매주 매주 교회에 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불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세상 친구도 많고 주일도 잘 놀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교회에 안 빠지고 오는 것 그 자체도 하나님께서 크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새벽에 참 일어나기가 힘이 들어서 새벽만 되면 모닝콜되는 시계를 몇 개씩 맞춰 놓고 잔다고 합니다. 
그래도 못 일어날 때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새벽잠이 없어서 새벽에 그냥 일어나는 사람하고 이렇게 새벽에 못 일어나는 사람하고 점수를 같이 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평가방법은 당연히 다르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도 못된 성질을 가지고도 적은 믿음을 가지고도 그런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려고 애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볼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크게 봐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볼 때 참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등치만 좀 컸지 무엇하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나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가난한 집안에서 남들처럼 사랑도 많이 받아 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입니다. 
성질이 착하고 순한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많이 해서 남들처럼 많은 학위를 가지고 박사가 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경이 좋아서 누구의 도움을 많이 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재치가 있거나 열정이 있거나 기회를 잘 만나거나 어느 것 하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부득불 자랑한다면 그런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 은혜와 사랑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천 수만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면서 좋은 집에서 화려하게 사는 목사들이 전하지 못하는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저는 매주 매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지고도 발견하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저는 발견하고 믿고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붙들고 저를 붙들고 여러분을 붙들고 사용하실 것이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이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적은 능력을 가진 자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성경말씀의 핵심인줄 알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 길이 참된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적은 능력으로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풍족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비교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은 능력을 받아서 힘이 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딴 길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은 비교적 적은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물질적으로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더 가난해지고 더 힘들고 사고도 더 나고 할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교회를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도 교회를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무척이나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님으로 어떤 유익이 없으면 교회를 떠납니다.

교회가 크고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고 유익을 주면 거기 머물고 교회가 대지를 구입하거나 건축을 한다고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면 떠나고 맙니다.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 자기가 불이익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충성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참 만나서 사귀기가 힘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것은 조금도 손해보기를 싫어하는 사람, 자기의 생각 자기의 고집은 조금도 꺾이지 않으려는 사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이 있으면 기를 쓰고 덤비는 사람, 남들에게 뒤지기를 죽기 보다 싫어하는 사람,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서 못 견디는 사람, 남 주기가 싫어서 쌓아 놓고 썩히는 사람...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사는 사람은 정말 만나기 싫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늘 뭘 달라고만 하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충성하기는 싫어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비록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은 없을지라도 오히려 더 손해를 보고 더 어려움에 처할 때라도 결코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우리 인생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인내의 말씀을 지킨 사람이 받는 축복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계3:1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적은 능력을 받아서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면 우리는 정말 무서울 것도 염려할 것도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배반치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때로는 범죄하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고 많은 것으로 충성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시험의 때는 최후의 심판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은 우리 인생에게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대학에 무시험 합격을 시켜 준대도 너무나 좋을 것입니다.
판검사 시험에 무시험 합격시켜준대도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무시험 합격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이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시련이 있어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시면서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신앙 안에서 참고 견디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참고 견디고 인내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토록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